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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 그거 뻥이지?" 하여튼 내가 살았으니 네놈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연안부두

장전 2014. 12. 28. 12:19

 

영화 국제시장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몇번 보려고 갔다가 중도에서 포기하고 돌아왔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아품의 눈물을 흘려야하는가..?

 

내 나이 7살때 6.25가 터졌고

멀리서 들려오는 포성소리와 거의 지붕을 스치듯 지나가는 비행기의 굉음은

어린시절 공포의 극치였다

 

어른이 되어서도

꿈에서 인민군이 뒤 쫒아오는 장면과 더불어 비행기의 모습은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는 대상이였다

 

당시 우리가 살던 집은 한성여고 바로 밑에 있엇는데

어머니 손에 매달려 외할머니 댁으로 가는 명륜동 길거리에는 죽은 시체가 즐비하게 누워 있었고

 길을 가다가 바로 곁에서 같이 걷던 아주머니 한 분이

 갑짜기 총을 맞고 쓰러지는 모습을 본날은 저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느날 새벅 총알을 피하기 위해 침대를 천막처럼 겹겹히 이불을 둘르고 자고 잇는데

어렴풋이 부모님의 말씀소리가 들려왔다

꼭두 새벽이엿다

 

"여보 이 애라도 고향으로 내려보내서 대를 이어야하지 않겠소"

"마침 고향 6촌 어르신께서 오늘 고향으로 내려 가신다 하니 그 편에 딸려 보냅시다"

아버지의 말씀에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하시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침에 부모님과 동생을 뒤로하고 6촌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서울 집을 떠났다

나에게 닦쳐오는 상황이 어떤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인천 연안부두였던것 같다

콩볶듯이 총소리는 다가 오는데 마지막 배라고하는 작은 연락선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서

모두가 거의 이성을 잃고 잇는듯

아우성과 고함소리로 난장을 이루고 잇었다

 

할아버지는 행여라도 나를 놓칠가봐 손을 꼭 붙잡고 인파를 해치며 마지막으로 배에 올랏다

배는 거의 수면에서 가라앚을듯 너무 많은 인원에 눌려 거의 침몰직전인듯 흔들거렸다

어느 누구도 이를 경고하거아 통제하는 사람도 없엇다

 

나는 어른들 틈새에 끼어 거의 숨을 쉴수가 없엇고

갑짜기 부모님과 아주 영영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만 막 떠나려는 배에서 뛰어내렸다

 

이에 놀란 6촌 할아버지께서

" 어 이놈이..." 하시더니 어쩔 수 없이 허겁지겁 간신히 뛰 내리셨고

뒤돌아 보니 배는 이미 항구를 벗어나고 잇엇다

 

할아버지의 원망소리도 뒤따르는 대포소리도 이미 나에게는 안중에 없었다

빨리 부모님과 동생에게로 되돌아 가야만 했다

 

 

배를 타지 못해서 실망한 사람들 사이로  갑짜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배 한 척이 더 온다는 것이다. 인민군은 이제 거의 목전까지 쳐들어 오고 이는 절박한 상황이였다

 

할아버지는 거의 내 손목이 으스러지도록 꽉잡고 필사적으로 배를 향해 뛰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마지막에 배에 오를 수가 잇엇다

 

이 배의 상황또한 먼저 떠난 배와 다르지 않았다.

배 밑창에 깔려서도 오로지 부모님과 동생에게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일념으로 참고 또 참앗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지금 가면 언제 부모님과 동생을 다시 볼 수 잇다는 말인가

 

 

얼마를 그런 상태로 항해를 계속했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갑짜기 나의 손을 꼭 잡으시더니

 "애야, 먼저떠난 배가 침몰되어 한명의 생존자도 없이 다 죽었다는구나"

"너 땜시 우리 살았다"

 

 

그 이후로는 기억이 거의 없다

단지 광주에 도착해 6촌 할아버지께서 그 간의 상황을 설명하시고는 나를 할아버지께 인계하시고 떠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나의 도착 인사를 받으시고 딱 한 말씀 하셨다

"잘왔다. 그리고 하늘이 너를 도왔다. 고맙다..."

 

나는 할아버지 아래서 부모님과 떨어져 광주 수창국민학교를 3학년 까지 다녓고

할아버지께서 서중 교장으로 부임하시면서 광주 중앙국민학교로 전학하여 거기서 졸업을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그후 일고 교장, 동중 교장, 전남 문리대학장 등을 두루 거치셨고

나를 데리고 가셧던 6촌 할아버지는 전남 문리대 교수로 재직하셧다

 

내가 부모님과 같이 산것은 광주 중앙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사대부속중학교에 합격한 후부터엿다

나는 인천 연안부두를 떠난지 그렇게 6년여 간을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다

 

아직 보지는 않았지만 영화 "국제시장"의 흥남 철수 작전은 규모만 훨씬 큰

 내가 겪었던 인전 연안부두 상황이었을듯 싶다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이 얼마나 가슴아픈 일인지...

 

 

당시 아직 어려서 긴박한 상황은 그리 기억에 없지만

6촌 할아버지 손을 잡고 부모님 곁을 떠나든날

나를 떠나 보내시던 어머니의 눈물은 지금도 가슴에 한으로 맺혀있다

 

 

몇년전인가 나를 광주로 데리고 가주셨던 6촌 할아버지께서 타계하시기 전,

고향에서 보내는 시제에서, 우리 가족들과 일가 친척들이 다 뫃인 자리에서,

할아버지께서는 웃으시며 말씀하셧다

"저 놈이 나를 살렸어..."

"저 놈 때에 내가 살았어"

 

 

**

 

 

어제 27일, 초등 3학년인 손녀가 영어 경시대회에 출전 하던 날

상을 받은 기념으로 우리 부부가 저녁을 같이햇다

 

식사가 거의 마쳐가는데 초등 5학년이 손자녀석이 낄낄거리며 묻는다

"할아버지 그거 뻥이지?"

"뭐가?"

"배가 뒤집어졌는데 살았다는거...ㅎㅎ"

손녀도 거든다."할아버지는 맨날 맨날...."

 

그래 뒤집어진 배를 안탔다는 것이나 뒤집어진 배에서 살아 왔다는거나..뭐가 다를거 잇겠나

하여튼 내가 살았으니 네놈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