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날 (glassy777) |
이번 여행의 의미를
3박 4일 가을날의 느림으로 설정했다
감나무 아래 걸음새도 느릿느릿
마음도 느릿느릿
동네 어귀도 느릿느릿
먼 발치께서
바라보고
답사리 돌각담장 아래에서
걸음을 멈추고
느릿느릿
고샅길 도랑을 따라
바쁠 것 하나없이
느릿느릿
도랑물에 손을 담궈도 보면서
담장을 느리게 느리게 넘어가는 가을볕
어느 집 담장 아래 사금파리
골목길에 흰구름
어느 처마 아래서
발길을 멈추고 봉창을 두드리면
그리운 사람이 얼굴을 보일까?
뒷짐지고 다시
느릿느릿 걷다가
세월의 더께를 둘러친
고요로움 속에 오래 머물러
아득히 멀어진 유년기를 그리워하다
세월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시류에서
나는 도대체 어드메쯤을 가고 있나
어머니가 된장을 뜨던 장독대도
어느 세월에 묻혀갔던고
가을빛 가뭇한
봉당 뜨락에서 너무도 쉬 지나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다
사람도 가고
세월도 갔지만
지금이라도 부르면
금새 내 앞으로 다가설 것만 같은
지난 세월들
이렇게 편리함만 쫓아
바쁘게 빠르게만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일일까?
마음을 다치고서라도
다시금 돌아가고픈 세월 저 편의
느리게 살아가는 동네에 들어
마음을 어루고 싶다
무너져간 세월 저 편이
무삼히 그립다
세월 저 편으로
내게서 아득히 멀어진 사람들
마을 안길 돌각담장 아래에서
그 이름자들을 하나씩 호명해 보노니
손을 꼽아 아득한 세월을
애증으로 멀어져간 사랑을
천리 밖 먼 곳을
그리워하다
할아부지
할무니
아부지
엄니
얘들아,
다들 어디로 간 것일까?
모두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전남 담양
슬로시티 마을을 나오면서
詩 한 소절을
암송하노니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되어 젖어 있는
비애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애정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지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 하면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온 사랑을 맞이 할까
- 이수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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