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uster Pluckers"
장전이씨
조선말 위정척사운동에 불을 지핀 노사 기정진의 벗이었던 이규형의 집안이다.
노사의 제자 였고 이규형의 아들인 이최선(1825~1883)을 중심으로 의병을 일으킬 준비를 했다고 한다.
영서당을 건립하신 이최선은
현재의 담양군 창평면 장화리 출신의 전주 이씨로서 양녕대군의 제 16대 손이었다.
전주 이씨는
이서 (緖 1484~?)(http://100.naver.com/100.nhn?docid=739798)
(http://blog.naver.com/bhgoh?Redirect=Log&logNo=40022776832) 가 담양에 유배 왔다가 눌러 앉은 이래로 12대 동안 거주하였다.
그러한 영향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최선의 선조 중에는 관직에 나간 경우를 거의 찾을 수 없다. 그의 조부인 세용은 창평의 장전 마을로 이거한 후 이들은 훗날 '장전이씨'로 불렸다.
이규형 - 노사 기정진과 同學
이규형의 아들 이최선 - 노사 기정진의 제자
이최선의 아들 이승학 - 노사 기정진의 제자
迎瑞堂을 건립하셨습니다
지금은 다 헐어내고 영서당과 안채와 대문만 남겨놓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승학의 아들 이광수 - 송사 기우만(노사 기정진의 손자이며 제자)의 제자
이최선은 병인양요(1866년)가 일어나자 전주 이씨들에게 의병에 나설것을 호소해서 '동의계'를 조직했다.
서양 오랑캐를 물리치기 위해 '종성구국론'을 내세웠다고 한다.
전라도 지역의 전주이씨 대표 가문으로 행주 기씨, 장흥 고씨, 울산 김씨, 연일 정씨 등과 혼맥을 형성했다고 한다.
기산림(奇山林)의 기우만을 중심으로 한 의병 활동에 적극 참여 한 집안이라고...
출처 : 순천대 홍영기 교수의 <담양 - 창평의 의병 활동>
-영서당은 도 지정문화재로 등록되지 못햇다
이유는 원형이 너무 많이 홰손되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잇는 이승기 박사댁이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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