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지금
내 인생의 전부를 탄주하는가.
황혼은 빈 밭에 새의 깃털처럼 떨어져 있고
해는 어둠 속으로 하강하네.
봄빛을 따라간 소년들은
어느덧 장년이 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네.
하지 지난 뒤에
황국(黃菊)과 뱀들의 전성시대가 짧게 지나가고
유순한 그림자들이 여기저기 꽃봉오리를 여네.
곧 추분의 밤들이 얼음과 서리를 몰아오겠지.
일국(一局)은 끝났네. 승패는 덧없네.
중국술이 없었다면 일국을 축하할 수도 없었겠지.
어젯밤 두부 두 모가 없었다면 기쁨도 줄었겠지.
그대는 바다에서 기다린다고 했네.
그대의 어깨에 이끼가 돋든 말든 상관하지 않으려네.
갈비뼈 아래에 숨은 소년아,
내가 깊이 취했으므로
너는 새의 소멸을 더듬던 손으로 악기를 연주하라.
네가 산양의 젖을 빨고 악기의 목을 비틀 때
중국술은 빠르게 주는 대신에
밤의 변경(邊境)은 부푸네.
악공은 노래한다. 바둑의 일국이 끝나듯 이 한 생도 덧없이 끝나리라는 걸. 악공은 유장하게 소멸의 노래 ‘몽해항로’를 탄주한다. 삶이라는 바다로 나온 빨간 갓난이, 꿈이라는 항로를 따라 소년을 넘고 청춘을 넘어 곧 서리와 얼음이 올 장년에 도착했노라고. 갈비뼈 아래 숨은 소년 꺼내어 중국술 나누는 추분(秋分)의 밤, 무엇보다 두부 두 모가 있어 술 빠르게 주니 이것이 이 밤의 기쁨. 몽해항로에 설계된 중국술과 두부 두 모의 기쁨 맛보려면 추분 지점까지는 풍랑을 헤치며 나아와야 하리.
<이진명·시인>
<몽해항로 2- 흑해행>- 장석주
잡풀들이 무너져 키를 낮추고
들에 숨은 웅덩이들이 마른다.
가을 가뭄은 길고 꿈은 부쩍 많아지는데
사는 일에 신명은 준다.
탕약이 끓는데, 이렇게 살아도
되나, 옛날은 가고 도라지꽃은 지고
간고등어나 한 마리씩 먹으며 살아도 되나.
요즘 웬만한 갈흉이나 굴욕은 잘 견디지만
사소한 일에 대한 인내심은 사라졌다.
어제 낮에는 핏물이 있는 고기를 씹다가
구역질이 나서 더 먹지를 못했다.
비루해, 비루해, 남의 살을 씹는 거,
내 구강(口腔)에서 날고기 비린내가 난다.
이슬람이라면 라마단 기간에 금식을 할 텐데,
금식은 얼마나 순결한가.
안성 시내에서 탄 죽산행 버스 안에서
취한 필리핀 남자 두 명을 만났다.
안성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겠지.
황국이 피는 이 낯선 땅에서 술을 마시며
헤매는 저 이방의 노동자들!
기온이 빙점으로 내려가는 밤
서재에서 국립지리학회보를 들여다보는데
뼛속의 칼슘들이 조용히 빠져나간다.
지난해 이맘때 자주 출몰하던 너구리가
올해는 보이지 않는다.
하천 양쪽으로 콘크리트 옹벽을 친 탓일까.
배나무에서 배꽃 필 무렵
잉잉대던 벌들도 올해는 드문드문 보인다.
주변에서 사라지는 것들이 많다.
가창오리들이 꾸륵꾸륵 우는 소리 들으니
집 아래 호수의 물이 어는 모양이다.
꿈속에서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버스를 탄다
누군가 흑해행 버스라고 했다.
검은 염소들이 시끄럽게 울어 댄다.
한 주일쯤 달리면 흑해에 닿는다고 했다.
나는 참 멀리도 가는구나, 쓸쓸한 내 간을 위하여
누가 마두금이라도 울려 다오,
마두금이 없다면 뺨이라도
철썩철썩 때려 다오, 마두금이 울지 않는다면
나라도 울어야 하리!
몽해 항로 /장석주
― 설산 너머
작약꽃 피었다 지고 네가 떠난 뒤
물 말은 밥을 오이지에 한 술 뜨고
종일 바람에 흰 빨래가 펄럭이는 걸 바라본다.
바람은 창가에 매단 편종을 흔들고
제 몸을 쇠에 쳐서 노래하는 추들,
오, 제 몸을 쳐서 노래할 수 있다면
덜 불행했으리라. 나는 몸을 쳐서
소리를 내지 못 하는 사람,
허나 소리의 아름다움보다 구업(口業)을 짓는
입은 닫는 게 낫다.
어제는 문상을 다녀오고,
오늘은 돌잔치에 다녀왔다.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작약꽃과 눈[雪] 사이에 다림질 잘 하는 여자가
잠시 살다 갔음을 기억할 일이다.
공중에 떠도는 몇 마디 적막한 말과
여래와 같이 빛나는 네 허리를 생각하며
오체투지(五體投地)하는 일만 남았다.
땀이 옷에 배인 뒤 마르면
마른 소금이 우수수 떨어진다.
해저보다 깊고 어두운 밤이 오면
매리설산(梅里雪山)을 넘는 야크 무리들과
양쯔강 너머 금닭이 우는 마을들을 떠올린다.
누런 해가 뜨고 흰 달이 뜨지만
왜 한번 흘러간 강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가.
바람 불면 바람과 함께 엎드리고
비가 오면 비와 함께 젖으며
곡밥 먹은 지가 쉰 해를 넘었으니,
동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가는 일만
남았다. 저 설산 너머 고원에 금빛 절이 있다 하니
곧 바람이 와서 나를 데려가리라.
음악/ 오카리나 얼후 연주/ 천년의 선 |
해 저무는 저녁, 함께 부르는 노래처럼 - [몽해항로]
http://blog.daum.net/mrblue/15962901
지난해 봄, [오늘의 시]란 책에서 "몽해항로"를 처음 만났다. '이 시는 시린 무릎에 담요를 덮고 썼던 몇 편 중의 하나다.'라는 시인의 고백을 거기서 들었다. '주변에서 사라지는 것들이 많다' ( "몽해항로 2"에서 ) (34)에 밑줄이 그어져 있다. 떠나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떠올랐나 보다. 그렇게 2009년 봄날이 갔다. |
사는 것 시들해 |
배낭 메고 나섰구나. |
노숙은 고달프다! |
알고는 못 나서리라. |
그 |
아득한 길들! |
- "달팽이" (47) |
그리고 2010년 설 무렵 시집으로 만나는 [몽해항로]는 삶의 바다를 건너가는 우리네 모습, 그대로다. 때론 흔들리기도 하고 때론 떠밀려가기도 하면서 우리는 한 시절을 항해중이다. 먼 길을 나선 저 '달팽이'처럼 언젠가는 닿으리라는 꿈을 안고…. 특히, 이 시는 평소 즐겨 부르는 패닉의 노래 <달팽이>랑 건네주는 느낌이 비슷하다. 와락 가슴에 와 안긴다. '알고는 못 나서'는 이 길, - 난 인터넷상의 '퍼스나콘'도 달팽이를 사용 중이라 더욱 눈에 들어온다.- '아득'하지만 함께 가니 덜 외롭다. |
누군들 얼룩이 되고 싶었으랴. - "얼룩과 무늬"에서 (29) |
~ 겨우, 살아 있으니까, |
겨우, 사랑을 견딜 수 있을 뿐이니까. - "겨우"에서 (17) |
살아가며 '누군들 얼룩이 되고 싶'으랴. '겨우' '살아 있으니까' 살아내는 삶을, 우리는 꿈(夢)처럼, 안개 낀 바다(海)처럼, 이 생(生)을 항해하는 중이다. 그 '항로(航路)'에 이런 따듯한 시집 한 권 있음이 적지않은 위로가 된다. |
시인은 "몽해항로" 연작 시편과 다른 시들을 따로 나누어 놓지는 않았다. 그처럼 굳이 똑같은 이름을 달지 않더라도 시들은 연작 시편에 이어지는 이야기들로 지나간 날들과 다가오는 삶에 대하여 속삭이며 다독거려준다. 그 목소리는 부드럽고 다정스럽다. 마치 항해에 지친, 해 저무는 저녁, 함께 나지막이 부르는 노랫가락처럼 말이다. |
전체를 놓치고 부분에 집착한 탓, |
이기는 법은 단순하나 |
지는 이유는 천 가지다. |
행복은 단순하고 |
불행은 복잡하지 않던가. |
거울의 뒷면 같은 진실, |
더 큰 진실일수록 |
잘 보이지 않는다. |
- "바둑 시편"에서 (79) |
소나무는 굽고 |
솔잎은 푸르렀다. |
기차가 지나갔다. |
어느덧 집은 낡았다. |
금생(今生)을 용서하니, |
식욕이 푸르렀다. |
- "나의 한때는 푸르렀다" (59) |
시집을 통하여 만난 시들은 잔잔한만큼 조금은 심심하기도 하다. 가슴을 뒤흔드는 격문은 찾기 어려웠다. 아마도 세상에서 충분히 겪는 큰 격랑을 시(詩)에서라도 피하라는 시인의 격려!이리라. 그리하여 삶은 모자라기도 하고 넘치기도 하면서 출렁이며 잔잔해지는 것이 아닐까? |
'곧 바람이 와서 나를 데려가리라' (101)고 시인은 이야기하지만 '가장 좋은 일은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좋은 것들은 늦게 오'리라. '가장 늦게' (103) 우리에게 다가오리라. 그러니 우리는 이 삶을 꿈결처럼 넘실거리며 살아내야만 한다. 그러다보면 언제든 어디에서든 우리는 살아갈 수 있으리라. |
저녁이면 물것들이 |
살냄새를 맡고 몰려든다. |
기절한 듯 몸 뉜 |
물설고 낯선 여숙(旅宿), |
영월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
물것들이 일러 주는 것이다.
|
- "영월" (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