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가장 강한 남자 9인 감히 누가 이들을 대적할까? |
어릴 적 누가누가 강할까를 두고 내기하곤 했다. 그 강한 녀석끼리 싸움 붙였던 경험,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었어도 ‘강한 남자’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하다. 특히 우리에겐 그들처럼 강해지고 싶기도 한 것이다. 현존하는 세계 최정상의 가장 강한 남자 9명을 만나 ‘강해지는 비결’을 당신의 것으로 만들라. |
생일 1931년 5월 3일 단수 검은띠, 10단 입문 스포츠 경력 60년 힘의 원천 이상적인 테크닉. 가나자와가 가라테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피나는 훈련으로 인한 결과다. 가나자와는 혼슈 섬의 어부 아들로 태어나, 11살까지는 다른 소년들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자존심 하나만은 센 소년이었다. 어느 날, 그는 골목길 싸움에서 우연하게 이겼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100kg급 스모 선수인 상대 아빠에게 머리를 맞고 소년은 녹아웃되었다. 오랫동안 소년의 머릿속에는 소음이 생겼다. “그가 맞은 귀도 여태껏 잘 들리지 않고, 이로 인해 그때 저는 학교에서 낙제도 했습니다.” 가나자와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도 밝혔다. “맞은 후에 저는 바닥에 넘어졌어요. 일어서서 대응하고 싶었지만, 그에게 한 대 더 맞는다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소년의 인생은 복수라는 한 가지 목표에만 집중되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주머니를 사달라고 졸랐고, 그 안에 모래를 가득 채우고 매일 이 펀치볼로 타격을 연마했다. 매일 아침 등교하기 전에 그는 나뭇가지를 넘어다니고 다른 운동과 병행하며 바다와 산으로 조깅했다. 힘을 단련시키기 위해 그는 럭비를 시작했고 일주일에 5일은 유도와 복싱을 했다. 복수는 성공했을까? “학교 졸업 전에 나는 이미 그 복수의 상대가 제게 아무 해도 끼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그를 용서했어요. 만약에 내가 용서하지 않았다면 그는 아직도 제 머릿속에 남아 있었을 거예요. 제 자신을 잘 알죠.” 가나자와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도쿄로 갔다. 가장 유명한 다쿠쇼쿠 대학의 가라테 학교에 입학했고, 1957년에는 팔이 부러진 상태에서도 제1회 일본 가라테 챔피언에 등극했다. 현재 가나자와는 살아 있는 전설이며, 쇼토칸 가라테 국제연합의 창시자이다. 그는 107개국에 500만 명의 제자와 기본기의 고수라는 평판을 가지고 있다. 조용하고 세심한 성격의 그는 세미나를 진행하며 책을 쓰고 있다. 이 조용한 노인이 가라테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가 상대에게 복수를 하는 사소한 시기로 결정되었다고 말하지는 마라. (오른쪽) 지드루나스 사빅카스 세계에서 가장 힘센 최강의 철인이 힘센 리투아니아인은 당신과 같이 600개의 근육, 200개의 뼈와 수백 개의 힘줄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그의 근육, 뼈, 힘줄이 훨씬 더 많은 것을 들 수 있다.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기본 정보 생일 1975년 6월 15일 신장 191cm 체중 165kg 힘의 원천 지드루나스는 강한 어깨와 이두근을 가지고 있다(둘레 60cm 가량). 이들은 지드루나스가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는 기록을 깨고 다리를 거의 쓰지 않도록 도와준다. 지드루나스가 수세기 전에 태어났다면 아마 신화적 영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난 세기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그는 텔레비전으로 씨름경기를 보면서도 강한 사람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15살에 그 징조를 발견할 수 있다. 그때 철인 3종 경기에 참가했고, 곧 이 경기에서 리투아니아의 신기록자가 되었다. 그는 동시에 리투아니아에서 철인 3종 경기 챔피언을 10번이나 거머쥐었고, 동시에 더 큰 승리를 위해 철인경기에 참여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나이가 되었다. 2003년부터는 ‘아널드 스트롱지스트 맨Arnold’s Strongest Man’ 경기에서는 누구도 지드루나스를 앞지를 수 없었고, 이미 연속 6년째 그는 최고 수상을 지키고 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상을 받기 위해서는 5가지 경기 결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 한다. 이 리투아니아인을 능가하길 원하는가? 주저하지 마라. 그의 모든 조건이 여기 공개되어 있다. 1차 경기 166kg 중량의 역기를 들어올리는 ‘아폴로 역기’다. 지드루나스는 이 기구를 8번 들어올린 세계 신기록 보유자이다. 2차 경기 22kg 포환을 높이 던지는 것이다. 사빅카스의 기록은 15m 37cm이다. 3차 경기 선수의 어깨에 500kg의 철근을 올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 리투아니아인에 대적할 적수가 없다. 그는 철근을 어깨에 메고 7.5초를 견뎠다. 4차 경기 30초 동안 470kg의 통나무를 들고 가능한 한 멀리 가야 하는 경기이다. 예상했겠지만, 그는 20m 가는 데 성공했다.
최고의 상금을 거머쥔 최강의 팔씨름꾼 팔씨름의 황금기는 1980년대 말이었다. 실베스터 스탤론의 영화 <오버 더 톱>은 이 시기의 ‘팔씨름’ 열풍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 팔씨름 시합의 승자 이름은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20년이 넘도록 이 경기에서는 존 브르젠크의 대적 상대가 없다. 기본 정보 생일 1964년 7월 15일 신장 189cm 체중 95kg 힘의 원천 전박근. 존의 할아버지, 아버지, 형제들은 팔이 발달되어 있다(브르젠크의 전박근은 39.5cm, 이두근의 둘레는 44.5cm이다). 온 가족이 팔씨름을 사랑한다. 훌륭한 팔씨름 선수였던 아버지를 둔 존은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경기에서 아버지를 이기려고 시도하면서 원하는 훈련을 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3세 때에 그는 아버지 친구와 팔씨름을 하다가 팔이 부러졌다. 많은 이들이 훈련을 지속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존은 깁스를 풀자마자 다시 의자에 앉았다. 18세 때에 존은 최초로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이 일이 1982년에 있었는데도 최근에 그는 25차례나 자신의 입지를 증명했고, 게다가 자신의 체급뿐만 아니라 100kg이 넘는 체급의 상대들이 있는 ‘무제한(최고기록 270kg)급’에서도 우승했다. 경기에서 브르젠크는 오른손과 왼손으로 모든 상금을 거머쥐었다. 현재 44세인 브르젠크는 델타 항공사에서 기계공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연간 1만3천~1만5천 달러의 상금을 받으며 선수권에 참여하고 있다. 암레슬러에게 이것은 최고의 금액이다. 그래도 아마 존의 역사상 가장 큰 상금을 받았던 ‘팔씨름’은 실베스터 스탤론이 개최했던 10만 달러 상당의 볼보 화물차를 받은 경기였을 것이다. 팔씨름 전문 사이트인 ‘암레슬링Armwrestling.com’에서 브르젠크와의 일문일답. 팔씨름을 매일같이 합니까? 일주일에 한 번만 합니다. 평소에는 제 형인 빌과 같이 힘센 사람이랑 몸을 풀죠. 그다음에는 저한테 도전하는 사람들과 대결을 합니다. 아직까지는 힘들다고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많은 도전자들이 있어서 다양한 기술을 시험해볼 수 있죠. 이런 결투 기회는 1~2시간 정도 가지죠. 좋은 팔씨름꾼과 나쁜 팔씨름 선수의 차이점은 뭘까요? 실력은 압력각에 따라 변해요. 상대의 손에 어떻게든 힘을 가하는 방법을 배운다면, 이로 인해서 상대에게는 다음에 어디서 압력이 가해질지 모르기 때문에 큰 부담으로 느껴질 겁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팔씨름 선수가 될까요? 예를 들면 근무 중에 길에서라도 항상 악력기를 휴대하세요. 힘을 가하면서 손목을 회전시키는 것은 좋은 운동입니다. 이는 손을 강화하지만, 측압은 경기에서만 발달되기 때문이다. 일정한 압력은 경기 중에는 생성되기 어렵고, 경기에 대한 흥미가 더욱 많은 노력을 쏟게 합니다. 어떤 비장의 무기라도 있나요?사소한 것들이 몇 개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송진가루를 손에 묻힐 때 손가락 부분과 새끼손가락 인근 손등 부분만 묻히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손바닥 중심이 약간 미끄러운 것이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분명한 것은 엄지손가락 부분에는 송진가루를 묻히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이 당신의 손을 잘 고정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른쪽) 케빈 패스트 자신보다 456배 무거운 무게를 옮기는 최강의 인간 견인기 케빈 패스트는 연달아 기네스북에 오르면서 인정을 받았다. 케빈은 근육의 힘을 키우는 데에 열중하며 현재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케빈은 45세이지만, 최근에 그의 힘은 더 세졌다. 견인차로 가져온 트랙터 중량을 쉽게 끈다. 기본 정보 생일 1963년 4월 13일 신장 180cm 체중 125kg 힘의 원천 캐나다인 성직자는 자신을 위해 기록을 세우지는 않았다. 그는 밧줄을 끌어서 번 돈으로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 아동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운동신경 질환자와 불우한 가정의 어린이 교육에 기증했다. ‘누구에게 도움이 필요할까’ 라는 생각이 그에게 힘을 주었다. 1998년 최고 중량인 16톤의 수레를 30.5m 이동시키는 기록을 세웠다. 1999년 위와 같은 트럭을 좀더 멀리 이동시켰다. 2001년 케빈은 또다시 밧줄로 27톤의 차량에 연결해서 30.5m를 이동시켰다. 2003년 이 인간 견인기는 2001년의 차량보다 1톤 더 무거운 차량으로 똑같은 방법으로 같은 거리를 이동하는 기록으로 자신의 40세를 기념했다. 2004년 비슷한 방법으로 그는 51.4톤의 트랙터를 30.5m이상 더 끌었다. 2007년 57톤의 차량이 사제의 뒤를 따랐다. 덧붙이자면, 그는 차량을 평지에서보다 어깨에 부담이 더 될 언덕에서 끌었다. 전세계에 존재하는 아주 특별한 힘! 기네스북에는 케빈을 제외하고도 특별한 데에 힘을 쏟는 천하장사들이 더 있다. 제자리걸음 2007년 9월 1일 7초 동안 오스트리아인 프란츠 뮬러는 그가 끌어야 하는 ‘람보르기니 디아블로Lamborghini Diablo(400마력)’를 옮기지 못했다. 인간과 증기선 2000년 6월 8일, 스위스의 게테보르그 조지 올슨은 1만300톤의 증기선을 5.1m 움직였다. 현존하는 견인제왕이다. 치아로 힘쓰는 사람 치아로 땅에서 281.5kg인 사물을 17cm나 들어올린 발테르 아르페이의 위대한 기록은 19년째 지속되고 있다. 새끼손가락 달인 노르웨이인 크리스찬 홈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새끼손가락을 가진 사나이다. 이 사람은 손가락으로 거의 0.1톤인 95.38kg의 데드프레스를 들어올렸다.
자신의 체중을 활용하는 최강의 보디빌더 8회 미스터 올림피아 우승자. 각각의 근육 단련에 막대한 시간을 쓰는 사람이기에 그에 대해 서술하는 것은 자칫 실례가 될 수 있다. 그래도 그중에서 몇 가지만 살펴보자. 시즌 사이와 경기 기간 중 로니의 체중이 10kg정도 차이가 나지만, 로니의 평균 체중은 138kg이다. 우리는 로니의 신체 각 부분을 대략적인 중량으로 계산하여 그의 모든 움직임이 물리적인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이 챔피언의 라이프스타일을 당신의 것으로 만들어보자. 기본 정보 생일 1964년 5월 13일 신장 177cm 체중 138kg 힘의 원천 유전과 뚝심. 12살에 로니 콜먼은 농구장에서 근육을 키울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때까지 그는 체육관에 가본 적 없었고 근육 운동은 스스로 했다. 호기심으로 체육관으로 향했고, 이후 32년간 체육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 로니처럼 양치질하기 의사의 권고사항대로 양치질을 하며 자신의 미소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완벽주의자이다. 모든 치아를 한쪽으로가 아니라, 위와 아래로 10번씩 반복적으로 양치질한다. 여기에는 어깨, 전박골과 손끝을 사용하는 320번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로니의 경우 팔은 12kg 정도 나가며, 양치질은 아침식사 전에 팔을 사용하는 준비 운동이다. 2 아침은 가볍게 한다 오트밀 500g과 가벼운 과일 요구르트 670g을 섭취한다. 콜먼이 ‘식사용 숟가락’인 기구를 사용함에 따라, 상기 음식물을 입으로 섭취하는 데에 12kg의 팔을 입까지 46번 들어야 한다. 3 운전 중에도 근육은 움직인다 로니는 일어나서 각각 28kg이 나가는 오른쪽, 왼쪽 다리로 연속적으로 걸어간다. 핸들에 그의 하중이 실리지 않더라도, 수 킬로그램으로 페달을 누르며 4kg의 전박근으로 핸들을 회전하며 돌린다. 4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 내년이면 로니가 경기에 처음 참가한 지 20년째 되는 해이지만, 자신의 원래 직업인 알링턴 교통 경찰직을 그만둔 적이 없다. 그의 경찰직은 ‘본 적이 없는 모습’으로 훈련하기에 적합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단순히 동료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보일지라도, 이는 실제로 목 근육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머리(5kg)를 내렸다 올리는 것이다. 5 동네 체육관도 상관없다 멋진 피트니스 센터에 다니지 않고, 낡은 벽, 녹슨 봉, 구석이 먼지로 뒤덮인 허름한 체육관인 메트로플렉스Metroflex를 다닌다. 로니는 그곳의 사람들에게 익숙해져서 마음에 든다. 어떤 이들은 이곳이 챔피언에게 어울리지 않는 장소라 여기지만, 그럴 때 그는 엉덩이를 들이밀며 발끈한다(그의 경우 엉덩이는 15kg이나 나가는 굉장한 부분이다). 로니는 시즌 사이에는 일주일에 5번씩 체육관에서 지내며, 경기 직전에는 6번씩 운동을 한다. 6 사랑도 운동하면서 한다 로니에 대한 글을 쓴 어떤 저자는 훈련에 대해 “로니는 가슴을 다잡았다” 라는 말로 시작했다. 유쾌하게도, 이는 체육관에서만의 일이 아니었다. 그의 부인인 크리스티나 역시 보디빌더이며, 이들의 운명적인 만남은 사랑의 도시인 파리에서 이루어졌다. (오른쪽) 후세인 레자자데 헤라클레스라 불리는 최강의 역도 선수 후세인 레자자데는 ‘이란의 헤라클레스’로 불린다. 레르네의 히드라도, 에리만투스의 멧돼지를 물리치지는 않았고, 아우게이아스의 축사를 체험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전설적인 그리스인은 국가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대되는 과업을 치렀다. 기본 정보 생일 1978년 5월 12일 신장 186cm 체중156.6kg 힘의 원천 애국심. 레자자데는 항상 그를 걱정하는 이란 국민 덕분에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역도를 시작하면서 그는 손을 들고 알라께 구원을 요청하고, 중량을 다 든 후에는 이란 국기에 키스를 한다. 첫번째 과업 헤라클레스의 첫번째 업적은 맨손으로 네메아 사자의 가죽을 벗겨온 승리다. 후세인은 구소련, 후에는 러시아 출신들이 즐비한 정상세계를 이란의 역도가 격파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는 1960년 이후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최초의 구소련 국가 출신이 아닌 최중량급 역도 선수가 되었다. 이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일어난 일이다. 두번째 과업 헤르페리스의 3개의 황금사과를 얻기 위해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어깨로 하늘을 받치고 있어야 했다. 호주 시드니 올림픽에서 승리한 후, 8년 동안 이란 출신의 헤라클레스만이 역도의 하늘을 떠받쳤다. 이 기간 동안 그의 발에는 3개의 황금사과보다 훨씬 많은 성과가 떨어졌다. 후세인은 세계선수권대회 4차례 우승, 아시안게임 2차례 우승을 거머쥐며 어떠한 적수에게도 승리를 내주지 않았다. 세번째 과업 각 과업에서 헤라클레스는 아무도 해오지 않은 것들을 해왔다. 후세인은 우월한 역도 선수가 아니라, 1980년대 말 이후 좀처럼 깨지지 않던 중량급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다. 앞으로의 챔피언들은 인상 213kg, 용상 263.5kg, 합산 476.5kg의 기록과 맞서야 한다. 네번째 과업 “넌 트라키아 왕인 디오메데스의 말을 데려다가 미케네로 끌고 가거라.” 이는 에우리스테우스 왕이 헤라클레스에게 내린 다음 명령이다. 후세인은 “다른 왕에게 넘겨라”는 체험을 했었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우승한다면(그의 우승은 확실했다), 레자자데는 임금 2만 달러와 상금 1천만 달러를 받으며 터키로 귀화하라는 제의를 받았다. 후세인은 이 제안을 거부했고, 이로써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그의 결혼은 생방송으로 온 국가에 방송되었다. 이란 전역에서 그의 결혼을 축복한 가운데 슬퍼하는 이도 몇몇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 헤라클레스와 이란인 레자자데 차이점이 하나 있다. 헤라클레스는 아베르누스호(지옥)까지 갔다가 아무 탈 없이 돌아왔다. 2007년 후세인은 인생에서 큰 고비를 맞게 되었다. 자동차 사고로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할 기회를 잃고 이 결과로 모든 다가올 더 큰 성공을 좌절시켰다. 그러나 그의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라이벌이 만든 최강의 그레코로만형 선수 2000년대에 누군가는 컴퓨터 마비를 두려워했지만, 누군가는 더욱 심각한 문제인 러시아 그레코로만형 영웅인 알렉산드르 카렐린의 은퇴를 우려했다. 이로써 비어 있는 자리는 2명의 후보인 카산 바로에프와 쿠바 출신의 미하인 로페스가 채우고 있다. 기본 정보 생일 1981년 12월 1일 신장 188cm 체중 120kg 힘의 원천 카산 상호간에 훈련하게 되는 경쟁 관계. 모든 영웅에게는 자신에게 대적할 라이벌이 있어야 한다. 바로에프와 로페스의 대적은 이미 1, 2년의 일이 아니다. 이미 5라운드의 결투를 치렀고, 바로에프는 상금 수에서 선두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대결은 아직 지켜봐야 한다. 1라운드 바로에프의 최초 성인경기에서 그는 그레코로만형 세계 무대에 새로운 강자가 나타났음을 확인시켰다. 2003년 카산은 세계 챔피언 역사상 최연소로 등극했으며, 정상에 오르는 과정에서 알렉산드르 카렐린의 4번째 금메달 획득을 방해한 룰런 가드너에게 패배를 안긴다. 이 승리에도 불구하고,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대회 전에 몇 차례 승리한 적이 있는 미하인 로페스가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결국, 바로에프는 금메달을 가지고 금의환향했으며 로페스는 메달을 따지 못했다. 2라운드 중국 광저우에서 바로에프와 로페스가 결승전을 벌였다. 이미 첫번째 매치에서는 카산이 6대 0으로 이기고 있었지만, 승리를 위해 그는 공식 시간이 종료되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팔로 쿠바인을 멋지게 뒤집어서 2006년의 챔피언은 러시아인이 차지했다. 3라운드 2007년 9월에 있었던 로페스로 인한 첫 패배를 바로에프는 잘 견뎠으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120kg급 두 명의 최강 선수들은 또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카산은 팀전에서는 졌지만, 러시아는 1위를 차지했고, 쿠바는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4라운드 이 두 라이벌의 다음 만남은 그레코로만형 국제경기인 ‘이반 포더브니 메모리얼Ivan Poddubny memorial’ 준결승에서 이루어졌다. 올림픽 해의 초반에 있었던 이 경기는 두 사람 중에서 베이징에서 메달을 딸 승자를 가리기 위한 큰 의미가 있었다. 러시아 선수 바로에프는 3대 1 승리로 경기를 마감했다. 5라운드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은 4년만의 빅매치였다. 바로에프는 올림픽 2관왕이 되어 전사의 영광인 판테온에 자신의 이름이 표시되기를 기원했고, 로페스 역시 지난 경기 패배를 되갚고 싶었다. 유감스럽게도 승리는 쿠바인에게 6대 1로 기울어 카산은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오른쪽) 에밀리아넨코 표도르 말이 필요없는 최강의 종합격투기 선수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터미네이터나 로보캅, 스탤론과 슈워제네거, 칩과 데일, 가라테 선수나 무사들 중 누가 더 강한지 알고 싶어한다. 성인들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표도르라고 답을 내릴 수 있다. 대체로 유도, 레슬링, 복싱을 섞어 만든 군대 무술인 ‘삼보’ 선수들이 강하다고 평가받는다. 기본 정보 생일1976년 11월 28일 신장 183cm 체중 104kg 힘의 원천 불굴의 의지. 러시아 스타리오스콜 출신인 평범했던 표도르는 전세계적 황제가 되었다. 그는 어린 시절에는 재능이 뛰어나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보다 더 노력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이것이 오늘의 그를 만든 것이다. 작가 빅토르 슈클롭스키는 <함부르크 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6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실질적으로 관전용 격투는 허용되었다. 그러나 1년에 한 번씩 세계 각국에서 격투가들은 함부르크로 모여들어, 누가 제일 강한지 겨루기 위해 비공개로 격투장 시설을 임대했다. 1 기원 아마 이건 관전경기의 전설일 것이다. 그러나 ‘1대 1, 무규칙’ 경기는 언제나 인기 종목이었다. 기원전 648년 이전까지 복싱, 결투 및 싸움이 결합된 피의 스포츠인 ‘판크라티온’은 올림픽 종목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어느 날 죽은 자에게 승리를 주는 것에 대해 격렬하게 논쟁했다. 대회 2관왕인 아리키온은 상대에 의해 숨을 거두었으나, 그 바로 전에 상대는 손가락이 꺾기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기권을 선포했다. 2 선구자 20세기 초 브라질에서는 ‘브라질 주짓수’ 격투가들이 ‘발리튜도(무규칙)’ 경기에 참여하면서 비슷한 형태로 새로운 장을 열었다. 차차 종합형 격투경기 혹은 무규칙 격투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브라질 고수들은 연달아서 다른 고수들을 이겼다. 움켜쥐는 것과 아프게 잡는 것이 복싱 기술보다 이런 경기에서 더 유용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3 새로운 황제 5년 전 세계 종합격투기에는 격투삼보 기술을 기본으로 한 새로운 황제 표도르가 나타났다. 그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생각한 대로 팔과 다리로 직격탄을 날리는 모든 격투 기술을 사용하는 비무장 자체 무기라고 할 수 있다. 구소련에서 격투삼보는 특수요원들만이 배울 수 있었지만 1991년 이후에는 이 극비 무술이 스포츠가 되었다. 15년 후 표도르는 삼보로써 종합격투기 프라이드PRIDE 무제한급에서 4 차례 우승했다. 29번의 결투에서 표도르는 눈가가 찢어져서 단 1번 패했다. 이후 설욕전에서 그는 무참히 상대를 짓밟았다. 그는 결전에서는 상대가 발루에프라 할지라도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한다. ‘믹스 파이트Mix fight’에서는 가치가 높은 선수들은 나서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믿기는 어렵다. 그러나 효도르가 자신의 경쟁자들과 벌인 결투를 본다면 이 삼보 선수의 자랑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유튜브www.youtube.com에서 ‘노게이라’, ‘크로캅’, ‘실바’를 검색해 표도르와의 결투를 찾아보라. 이 선수들과 에밀리아넨코는 최상의 경기를 치렀다. |
기자/에디터 : 백승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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