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위량 (潘玉良, 1895-1977) 중국 최초의 서양화가. 8살 때 부모를 잃고 아편 중독자인 외삼촌에 의해 6년 동안 키워짐. 14살에 외삼촌에 의해 기생집에 팔려감. 이곳에서 첫 손님이었던 세관 고위 공무원 판찬화(潘贊化)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판찬화는 위량을 첩으로 맞아 그녀의 미술적 재능을 일깨워 줌. 이후 상하이 미술전문학교에 입학, 화가의 길을 가게 된다. 이후 위량은 누드화에 심취, 공중 목욕탕을 전전하며, 혹은 벌거벗은 자신의 몸을 보며 누드화를 그린다. 그녀의 누드화는 비천한 출신이라는 사회적 굴레를 벗어버리기 위한 상징이었으나, 기생 출신에 누드화를 그린다는 이유로 엄청난 사회적 조롱과 지탄을 받는다. 상하이 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남편의 후원으로 파리로 유학, 파리와 이탈리아에서 10여 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 학계와 예술계에서 촉망받는 여류화가 겸 교수가 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창기 출신이라는 과거가 들춰지면서 지속적인 고통을 받았고, 자신의 출신성분이 남편의 신변까지 위협한다는 것을 알고 파리로 돌아가 결국 그곳에서 숨을 거둔다.
실비아 플레이스(Sylvia Plath, 1932-1963)
미국의 여류 시인. 영국의 유명 시인 테드 휴즈의 아내로, 오븐에 머리를 넣는 엽기적인 방식으로 자살로 유명한 시인으로 세간에 알려졌으나,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창적인 작품을 생산했던 매우 뛰어난 시인이었음. 플레이스는 이후 남성위주의 배타적 창작 환경에 의해 희생된 천재 시인으로 기록됨.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1907-1954) 멕시코가 낳은 세계적인 여류화가. 천재적인 그림만큼이나 고통스러웠던 인생 역정으로도 유명한 여성. 7살에 소아마비로 장애인이 됨. 14살에 멕시코 최고의 명문인 국립예비학교에 입학. (2천 여명의 신입생 중 여학생은 겨우 30여 명이었음.) 18살에 버스를 타고 가다 대형 교통사고가 나 버스 손잡이를 지탱하는 쇠파이프가 가슴에서부터 골반, 허벅지를 관통하는 끔찍한 치명상을 당함. 모르핀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엄청난 고통을 잊기 위해 병상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 1928년 공산주의 혁명가이자, 천재 화가였던 21살 연상의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 결혼. 의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프리다는 끊임없이 디에고의 아이를 가지려 했으나 거듭 유산함. 디에고는 아내의 불행에도 줄기차게 바람을 피웠고, 급기야 프리다와 절친한 친누이와 애정 행각을 벌이기에 이른다. 미칠 듯한 절망 속에 프리다는 그림에 빠져듦.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왕성한 예술 활동을 벌였고, 그림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음. 사고의 후유증으로 수 차례의 척추수술을 받았고 급기야 회저병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는 등 상상키 어려운 육체적 고통을 받음. 이런 중에도 반미 공산주의 시위 및 반전 운동에 참여. 1954년 사망.
까미유 끌로델 (Camille Claudel, 1864-1943) 1864-1943. 로댕의 연인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천재 여성 조각가. 마치 조각을 위해 태어난 듯, 어린 시절부터 조각에 신기에 가까운 기술과 열정을 보였다. 19세에 로댕을 만나 그의 제자 겸 조수, 예술적 경쟁자, 그리고 연인 관계로 발전함. 그러나 로댕으로부터 버림받은 후 극심한 정신적 타격을 받은 까미유는 평생 로댕에 대한 피해망상과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결국 정신병원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나혜석 (1896-1948) 일제시대 개화기를 살았던 조선 최초의 여류 화가이자 여성 운동가. 부유한 명문가의 자손이자 친일파의 아내로 호위호식하며 살 수 있었으나 자신의 지위와 부를 이용해 독립운동과 여성 교육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음. 조선 최초의 여류 화가로서의 명성을 쌓으며 승승장구 했으나, 파리 유학 시절 최린과의 간통 혐의, 남편의 배신 등으로 급작스럽게 몰락하기 시작함. 그는 사회적 멸시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연이어 언론에 여성 차별과 권리에 대한 파격적인 발언을 해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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