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렀던 흔적들

[스크랩] 육조단경 강의를 시작합니다.

장전 2007. 4. 15. 07:13

    성주사에서 11월 2일 부터 매주 목요일날 시작해서 약 5개월간 성철스님이 번역한 돈황본 육조단경 강의 한 것을 녹음해 올립니다. 옥련암법우님들께서는 이번 강의를 듣고 정견을 갖추어 견성성불하는 초석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육조단경』은 6조 혜능의 사상적 자서전이며 동시에 새로운 출발을 선언하는 중국 선종의 창립 선언서이다. 일명 법보단경(法寶壇經)」이라고도 불리우는 『육조단경』은 혜능이 광동성의 소주(韶州) 대범사에서 행한 설법을 중심으로 혜능의 어록과 문답을 제자 법해(法海)가 기록한 법어집이다. 중국 선종에서 선사의 법어집에 경(經)이라는 제목을 붙인 예는 본 문헌뿐일 정도로 선문의 존숭을 받아왔다. 혜능의 가르침을 ‘대승의 궁극적인 가르침(大乘圓敎)'으로 파악한 선승들은 혜능의 법어집을 경(經)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이다. 선지식들이여, 보리반야(菩提般若)의 지혜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본래 스스로 가지고 있다. 다만 마음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대선지식의 가르침을 찾아서 견성(見性)해야만 한다. 선지식들이여, 이제 나를 만났으니 그대들은 지혜를 이루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이 법문은 선정(禪定)과 지혜를 근본으로 한다. … 선지식들이여, 우리의 법문은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가르침으로 모두 무념(無念)을 종(宗)으로 하고 무상(無相)을 체(體)로 하며, 무주(無住)를 근본으로 한다. 이처럼 돈오와 견성을 근본으로 하는 남종선의 종지를 대담하고 당당한 어조로 설하고 있는『육조단경』은 혜능의 선사상을 알 수 있는 근본 자료이며 혜능 이후의 모든 선승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불어넣어준 역사적인 문헌이다. 그래서 돈황본『육조단경』은 다음과 같이 이 문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만약 선의 근본 가르침을 논할진대 『단경』을 전수하여 이로써 기준을 삼을지니라. 『단경』이 아니고서는 곧 법을 계승해 나갈 수 없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 사는 곳과 나이,성명을 알며 법을 부촉하더라도 모름지기 『단경』의 가르침을 주고 받지 아니하면 남종선의 제자가 아니니라. 우리나라 불교에 끼친 『육조단경』의 영향은 실로 크다. 『해동고승전』의 저자 각훈(覺訓) 스님이 1103년에 썼다고 전해지는 『선종육조혜능대사정상동래연기 (禪宗六祖慧能大師頂相東來緣起)』에 의하면 이미 신라 성덕왕(702-736) 때 전남 영암군 운암사의 삼법(三法) 스님이 법보단경초본(法寶壇經抄本)」을 읽고 있다. 그 『동래연기』에 의하면 삼법 스님은 혜능 대사의 높은 이름을 듣고 꼭 한 번 뵙고자 하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혜능이 입적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나는 후생으로 변방에 살고 있어서 당대의 진불(眞佛)을 친견하지 못했다" 라고 한탄한다. 그때 전북 익산군 미륵사의 규정(圭晶) 스님이 중국에서 돌아와 혜능이 설한 『법보단경초본』 1권을 보여주었다. 감격한 삼법 스님은 공경하는 마음으로 향을 사루고 이를 읽는다. 그 가르침은 마치 혜능이 직접 삼법 스님 자신에게 설하는 것과 같은 깊은 감동을 준다. 그리고 『법보단경』에 실려 있는 혜능의 예언에 따라 중국으로 잠입하여 6조 혜능의 정상(頂相, 머리)을 훔쳐서 신라로 옮겨온다. 지금 그 정상이 지리산 상계사의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에 봉안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또한 고려의 보조지눌(普照知訥, 1158―1210) 스님은 『육조단경』과 송대 간화선을 완성한 대혜종고의 서한집 『대혜서(大慧書)』를 읽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25세 때 전남 나주의 청원사에서 덕이본 단경 제4 「정혜품」에 실린 "진여자성이 염을 일으켜 육근이 비록 견문각지하지만 만상에 물듦이 없으니 진성은 항상 자재하기 때문이다 [眞如自性起念 六根雖見閒覺知 不染萬像 而眞性常自在]"라는 구절을 읽고 깨달음의 길에 대한 최초의 굳은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그후 보조지눌은 "사람들에게 항상 『금강경』을독송하기를 권하고 선법을 세워 펼 때는 『육조단경』을 지침으로 삼았다"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의 나이 50세가 되던 1207년, 『육조단경』을 새로 간행하려는 수선사(修禪社) 담묵 스님의 요청에 의해 평생 『육조단경』을 수행의 지침으로 삼아온 자신의 깊은 이해가 담겨 진 발문(跋文)을 쓰고 있다. 이 『육조단경』 발문은 현재 보조지눌의 선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매우 중시되는 문헌이다. 그후 보조의 발문이 실린 덕이본 『육조단경』은 무려 20여 차례나 중판을 거듭하면서 우리나라 선문의 사상적 지침으로 읽혀져 왔다. 현대에 이르러 해인사의 성철 스님(1912―1993) 또한 『육조단경』을 "동토(東土) 선종의 근본이 되는 성전(聖典)이다"라고 중시하고 직접 돈황본 단경에 현토와 편역을 하고 있다. 성철 스님은 스스로 토를 달고 번역한 돈황본 『육조단경』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는다. 『단경』의 근본사상은 식심견성(識心見性, 마음을 알아 성품을 봄)이요, 식심견성은 법신불(法身佛)인 내외명철(內外明徹, 안팎이 사무쳐 밝음) 이어서 견성(見性, 성품을 봄)이 곧 성불(成佛, 부처를 이룸)이므로 깨달은 뒤(悟後)에는 부처님 행을 수행한다 (修行佛行)고 분명히 하였다. 뒷날 교가(敎家)의 점수사상(漸修思想) 이 섞여 들어와 오후점수론(悟後漸修論, 깨친 뒤 점차로 닦는다는 주장)이 성행하나, 이는 『단경』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니, 육조대사의 법손인 선가(禪家)는 『단경』으로 되돌아와 육조대사 본연의 종풍을 떨치기 바란다. 이처럼 현대의 가장 저명한 선승이었던 성철 스님은, 선문(禪門)은 『육조단경』의 참된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대 한국 불교계에서도 가장 널리 유통되고 있으며 많이 간행된 선문헌은 단연 『육조단경』이다. 그만큼 『육조단경』은 우리나라 선문에 불후의 영향력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광동성의 가난한 나무팔이 청년에서 불성청정(佛性淸淨)의 세계, 압도적인 인간 신뢰를 선언하는 선문의 조사로 역사의 무대에 나타난 혜능의 어록은 지금 산사의 경판고(經板庫)에 쌓인 오랜 시간의 먼지와 중앙아시아의 모래를 털어 내고 우리를 향하여 걸어오고 있다. 현재 전해지는 『육조단경』의 구성에는 후인들이 첨가한 내용이 있으며 판본은 크게 돈황본(燉煌本, 780년경) ,혜흔본(慧昕本, 967년) , 덕이본(德異本, 1290년) ,종보본(宗寶本, 1291년)으로 나뉜다. 이번에 강의할 교재는 성철스님께서 번역한 돈황본 육조단경이다.
출처 : 옥련암
글쓴이 : 산빛노을(원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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