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정의내리려는 시도는 결국 자신의 외연을 묘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 자신들의 성향을 결정하고 살아갑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을 일컬어 정직한 사람이라고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는 분명 정직이라는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그 가치를 자기 생활의
지도 원리로 삼아 살아가고자 노력할 공산이 큽니다. 그러나 한번 냉철하게
생각해봅시다. 과연 그는 진정으로 정직한 사람일까요? 불행하게도
그 질문의 답은 우리도 모르고 그도 모르고 심지어는 하늘도 모릅니다.
그가 정직한 사람이기 위해서는 표리가 유동해야 합니다. 즉 겉과 속이
완전히 같아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런 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최소한
생활인 중에는 존재할 수 없읍니다.
그러므로 그의 정체는 정직`한` 사람이기보다는 정직`하고 싶은` 사람일 터입니다.
이렇듯 스스로에 대한 이런 저런 정의들은 결국 자신이
이렇게 저렇게 되고 싶다는 바램에 다름 아닙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에게 내리는 부정적인 정의들도 자신이 어찌 어찌 되어
보고 싶다는 이야기일까요?
일례로 어떤 사람이 스스로를 일컬어 자신은 게으른
사람이라고 했다고 해 봅시다. 과연 그는 진정 게으른 사람이
아니고 게으르고 `싶은 ` 사람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세상에 게으르고 싶은 사람이 어디있겠냐며 반문 하실 분들이
계시겠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게으르고 싶은 존재입니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여러가지로 몸을 움직여야 하지만
역시 인간에게는 게으르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야만 합니다.
어떤 일에 몰두하여 온시간을 일에만 매진한다면 인간은 소진하여
죽고맙니다. 실제로 우리가 몸을 돌보지 않고 무리해서 일에
매어달리게 되면 우리의 육체는 `몸살`이라는 경고를 보내오게 됩니다.
몸살이야 말로 우리에게 게으를 것을 강요하는 몸의 신호입니다.
성실과 근면이 신앙화되어 버린 성취 지상의 사회에서 지극히
부정적으로 들리는 게으름이라는 정의 조차도 사실은
그렇게 정의한 사람의 정확한 실상 보다는 그가 그렇게
되고 싶다는 바램을 전한 것으로 보는 편이 더욱 타당합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정의하려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정확한 실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싶은 자신의
희망케릭터 라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겠습니다.
즉 나는 재미없는 사람입니다 --> 나는 재미없고 싶은 사람입니다.
나는 진지한 사람입니다 --> 나는 진지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기타...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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