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렀던 흔적들

“동시대를 살아가는 위대한 시인의 시를 소개할 수 있어 너무나 영광이다.

장전 2023. 5. 26. 21:23

“동시대를 살아가는 위대한 시인의 시를 소개할 수 있어 너무나 영광이다.” ― 옮긴이 김목인 (싱어송라이터, 작가)
“날것의 욕망 속에서 붉게 번식하고 굶주린 꿈속에서 서식하다 끈끈한 침을 뱉는 시.” ― 영화 ‘모어’ 배우 모지민 (작가, 드래그 아티스트)
“시집을 펼치자마자 서점에 벼락이 떨어진 기분이었다. 멋진 시집이다.” ― 서점극장 라블레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란 슬로건은 브라네 모제티치에 의해 이렇게 변용된다. 시시한 것이 혁명적인 것.”― 경향신문 이영경 (기자)
● 책 속으로
“무의미가. 내 자신의 삶 앞에 섰을 때 갑자기 엄습하면, 나는 뒤돌아 뛰쳐나간다. 동네와 가게들을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내내 대화를 나눈다, 우스워져 나를 좋은 분위기로 돌려놓는 시시한 것들에 대해 얘기한다, 말장난을 하고, 뜻깊은 말이라 해도 더 이상 어느 것도 치명적이지 않고, 비극적이지 않고, 결정적이지 않다.” 시시한 말(12)
“나는 새로운 메시지가 없나 계속 휴대폰을 확인하는 스스로를 깨닫는다. ‘네가 보고 싶어.’라는 말을 보려고 읽기 버튼을 누르는 걸 나는 어찌나 좋아했던지.” 시시한 말(25)
“사람들은 한때 사랑을 알았고, 현관에 조용히 앉아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거나, 지는 해를 보거나 다가오는 폭풍 구름들을 봤다고. 이따금, 그들은 책을 펼치고 오래된 글들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시시한 말(35)
“어렵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한 게 아니라면. 오늘은 휘트니 휴스턴이 세상을 떠났다. 로슈카 거리보다 몇 년 전, 너는 그녀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언제나 나를 사랑할 거라며.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건 그냥 노래였다. 그래도, 너의 노래를 듣는 건 근사했다. 게다가 그 노래가 라디오에서 백 번을 흘러나와도, 내 안에 여전히 그 또 다른 키치를 불러일으킨다.” 끝나지 않는 혁명의 스케치(10)
“사람들은 나에게 운동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집에 머물러야 한다고. 혁명은 피하라고. 내가 충분히 나이를 먹자, 더 이상 혁명은 없었다. 그저 약간의 서투른 행진들만. 이것이 내가 저항에 대한 스케치들을 그리기 시작한 이유이다.” 끝나지 않는 혁명의 스케치(23)
“왜 당신은 시에서 당신의 게이 정체성을 그토록 강조하죠, 그걸 빼면 당신은 아름다운 시를 쓰는데 말이죠, 그게 독자로서 저를 짜증나게 하는 점이에요. 나는 대충 이런 식으로 무언가를 웅얼거렸다: 그럼 다른 누군가의 시들을 읽어야죠, 위궤양을 얻지 않으려면. 그러나 나는 속으로 끓었다. 내가 무언가를 강조한다고? 나는 기억할 수 있기에, 내 자신에 대해 써 왔고, 내 이야기를 써 왔다. 나는 30년째 차별에 대해 말해 왔고, 내 인생 전체를 희생해 왔다, 그저 나와 우리 게이들 모두가 더 편해지도록” 끝나지 않는 혁명의 스케치(39)
13개국,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시인 브라네 모제티치의 자선 대표 시집 『시시한 말』과 『끝나지 않는 혁명의 스케치』. 두 권을 마치 동전의 앞면 뒷면처럼 한 권으로 묶는 실험적인 방식으로 펴냈다.
『시시한 말』에는 어린 시절 사랑을 찾아 헤맨 여정이 담겼고, 금기시된 성적 실천이 솔직하게 기록됐다.
『끝나지 않는 혁명의 스케치』는 시인의 정치적 면모가 담긴 대담한 산문시이다.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는 목소리와 성 소수자로서 느낀 외로움과 공포를 이겨내고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목소리가 담겼다.
슬로베니아 류블라냐 대학에서 비교 문학과 문학 이론을 공부했고,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아르튀르 랭보, 장 주네, 미셸 푸코를 번역한 바 있는 시인 브라네 모제티치는 1990년 이후 30년간 LGBTQ 운동가이자 커밍아웃한 작가, 번역가, 편집자로서 전 세계를 오가며 출판 및 인권 활동에 전념해 왔다. 해방의 작은 불꽃들은 꺼져 가고, 주변부는 무너지며, 긍정적인 삶에 대한 자기계발서만이 쏟아지는 소비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인은 자기답게 숨 쉬고 꿈꿀 권리를 이어가기 위해 쓰고, 낭독하고, 걷는다.
시를 한국어로 옮기는 일은 비트 시인 앨런 긴즈버그 등을 꾸준히 소개해 온 번역가 겸 음악가 김목인이 맡아, 시 고유의 음악성을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