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죽음을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다. 나, 김시우는 아래와 같이 유언을 남긴다.
내가 코마 상태에 빠지면 주저하지 말고 안락사를 시키고 장기는 기증하라.
운전 면허증에 장기 기증자로 표기되어 있으니 교통사고로 죽으면 시신은 병원으로 이송될 것이니 너무 놀라지 마라.
장기 수혜자에게 내가 누군지 알리지 말라. 그가 자신의 장기로 알고 살게 하라. 그것이 내가 영원히 사는 길이다.
노력했지만 온전한 하나님의 종이 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믿음으로 영생하는 법을 깨우치지 못했다.
나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라.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심장에 녹아 흐를 것이다. 이 또한 내가 영원히 사는 길이다.
이역만리에서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자가 용서받을 수 있도록 기증한 장기를 제외한 살과 뼈는 화장하여 태평양을 건너 선산에 계신 부모님께 이르게 하라.
운전 면허증에 Donor 와 하트가 있는데 심장만 기증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왜 눈깔을 빼냈냐고 항의 하지 마라. 내가 창피해서 눈을 못 감는다.
장례는 치르지 말 것이며 한 줌의 재가 된 내가 거친 파도를 만나지 않고 고향 땅에 무사히 도착하게 해달라고 묵념 정도로 끝내라.
나의 모든 권리와 재산은 평범하지 않은 삶으로 힘들었으나 나를 놓지 않은 아내와 아내가 지정한 자선 단체에 귀속한다.
훗날 나의 죽음을 알게 된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면 '다 갚지 못한 은혜 저승에서 갚을 것'이며,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평안히 눈을 감았다고 전해라.
과분한 사랑을 받았으니 너무 슬퍼하지 마라. 충분히 즐겼고 행복했다. 서두르지 마라. 행여 내가 더 힘들어 할까 울음 소리 새어나갈 새라 이불 쓰고 인내한 시간에 비하면 내가 기다려야 할 시간은 짧다.
미안해 하지도 마라, 참으로 고생 많았다. 내가 못 다한 시간을 온전히 천천히 다 누리고 와라.
내가 저 생에서 기다리는 만큼 이생에서 많은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먹고 사는 일로 빼앗긴 시간만큼 같이 붙어있자.
누가 먼저 죽을지 모르니 이 유서의 주어와 목적어만 바꾸어서 당신의 것도 써달라고 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아서 없던 것으로 하련다.
끝으로 시집 또 가도 좋은데 어떤 영감탱이인지 대충 감이 오고, 그 예감이 맞으면 울화통 터질 것 같으니 내가 모르게 해라.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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