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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부상과 더불어 함께 공존하는 능력주의는 정말 공정한가?

장전 2022. 2. 11. 03:06
신자유주의의 부상과 더불어 함께 공존하는 능력주의는 정말 공정한가?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가 던지는 질문은 누구라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담론에 의심의 화살을 드리운다.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의해 부와 권력을 정당하게 성취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핵심이 돼버렸다. 10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지위의 세습에 의해 부와 권력이 유지되던 암흑의 터널을 지나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기회가 부여되고 일정 능력을 갖춘 노력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자신의 지위를 상승시킬 수 있는 사회 공동체적 환경이 구축되었다.
그런데, 집권 엘리트들은 대학 학위야말로 성공의 길이자 사회적 명망의 기반이라고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에 능력주의가 오만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대학을 못 가거나 수준 낮은 대학 출신 자들에게 고약한 낙인이 찍히게 됨을 나 몰라라 한다. 그러다 보니 포퓰리즘이 부상하고 미국에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다. 미국의 노동 계급자들이 그동안 받아왔던 굴욕을 미국다움으로씻어버려야 한다는 트럼프의 목소리가 도덕성과 능력주의를 에둘러 비판했던 것이다.
경제활동이 제조업에서 자본의 재생산으로 변화되면서 특정 전문 직업인들이 사회적 보상을 과하게 챙기면서 전통적인 일자리에 대한 명망은 급락했다. 물적분할을 통한 자회사의 상장과 경영인들의 주식 매도, 스톡옵션을 받은 직원들의 일탈과 재입사의 행태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지만 아름다운 행동은 아니며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능력주의는 '누구나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고 자수성가할 수 있다.'라는 말이다. 능력주의의 이상은 개인이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일은 바람직하다. 그것은 도덕적 행위자이자 시민으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 각자가 삶에서 주어진 결과에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또한 능력주의의 결과가 개인의 능력으로 100퍼센트 얻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행운, 우연, 공동체적 흐름, 특정 권력의 지지 등 다양한 배경과 흐름 속에서 능력주의의 결과가 반영된다. 즉 부와 권력의 획득은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능력과 노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분배의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은 능력주의의 성공을 도덕의 틀로 씌워버린다. 능력과 노력에 대한 개인의 성공은 선함으로, 부와 권력 획득에 실패한 사람들에게는 낙인의 도장을 찍어 버린다. 신의 은총은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무기가 된다. 반면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벌이라는 무언의 틀을 씌운다.
능력주의 신봉자들에게 사회적 포퓰리즘은 악으로 취부되고,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해도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미국의 영아 사망률이 한국보다 훨씬 높고, 의료보험 혜택을 못 받고 비싼 의료비로 치료도 못 받는 사람들이 허다하다는 것은 이를 증명한다. 또한 클린턴, 오바마로 이어지는 미국 민주당이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에 패배하고 영국의 브렉시트가국민투표에 의해 통과되었을 때 미국과 영국의 노동자 계급의 70~80%가 트럼프와 브렉시트에 표를 던졌다.
2000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 민주당의 지지층이었던노동자들은 민주당의 고학력 엘리트 출신의 지도자들에게 등을 돌렸다. 교육의 평등한 기회 부여 속에서 능력 있고 노력만 한다면 세계화의 무한 경쟁 속에서 인종, 민족에 상관없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클린턴과 오바마의 능력주의 담론은 대학에 가지 못했던 미국의 3분의 2 국민 다수에게 외면당한 것이다. 미국의 민주당이나 영국의 노동당에는 노동자 출신이 거의 없고, 대학 미 졸업자는 10% 수준이라는 것이 진보 정당의 현실이 돼버렸다.
능력주의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성공은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결정되며, 책임은 각 개인에게 있다는 결정론은 그렇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에게 심각한 심리적 압박감을 제공한다.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자괴감은 우울증, 대인기피증으로 확대되고 심할 경우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내던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성공이란 사회적 프레임이 낙오자에게는 실패에 대한 어떤 용납도 용인될 수 없는 무거운 사슬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사회는 건강하고 지혜로운 공동체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즉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정당화한다."라고 저자는 책 '공정하다는 착각'을 통해 말하는 것 같다.
정치철학자의 깊은 성찰이 책 곳곳에 묻어나 있다. 근면 성실함의 능력주의와 신의 은총을 동일시 한다는 청교도 이념,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 자유주의를 통과한 미국 정치의 능력주의 변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입시 부정 사건과 정치 스캔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포퓰리즘 등 샌델 교수는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불편한 질실을 책에 담아냈다.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신분 상승을 위한 기회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져 있으므로 능력있고 노력만 한다면 부와 권력을 성취할 수 있다는 도덕적 신념은 오히려 극심한 불평등과 양극화를 낳았고, 미국의 45~55세와 대한민국의 70세 이상의 자살율을 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부의 재분배를 통한 소득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제도만 정착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처럼 모든 정치인들이 이야기 하지만 놓치고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피상적인 소득 분배 뿐만이 아니라 일에서 얻는 성취감과 가족, 사회 등 공동체에 무언가를 기여했다는 자존감의 회복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추경을 얼마나 편성해야 하는지 서로 당파 싸움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 인류애적인 해답을 찾기위한 논쟁을 더 늦기전에 시작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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