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선 이야기] 독선과 아집의 행진들
왜, 트로이의 지배자들은 수상쩍은 목마를 성안으로 끌어들였을까? 그리스 측의 간계를 의심해야 할 이유는 산더미처럼 많았는데 말이다. 10년 동안 전쟁으로 수많은 병사가 죽어 나가자 전쟁을 그만두고자 하는 신의 장난인 것이었던가.
왜, 조지 3세 치하의 영국 내각은 식민지 아메리카와 평화롭게 지내기보다 오히려 일관되게 억압하는 쪽을 택하였을까? 많은 고문관이 이익보다 손해가 크다는 것을 되풀이하여 충고하였음에도 그 길을 택하여 미국의 독립을 재촉한 것일까. 미국의 독립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 이어 패권국으로 발돋움한다.
왜, 프랑스 루이 14세는 낭트 칙령을 폐지하여 신교도인 위그노를 추방하는 멍청한 짓을 하였을까? 당시 사람들은 비난하기는커녕 열광적으로 환영했고, 죽은 뒤 30년에도 최대 업적으로 찬양하였지만, 위그노는 직물업자, 제지업자 등의 장인들이었다. 그들이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탈출함으로 세계 패권이 네덜란드로 이동하였음은 물론 프랑스가 근대화에 뒤처지게 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왜, 아스테카 왕국 몬테수마(Montezuma) 황제는 인구 30만의 도시와 혈기 넘치는 용맹스러운 군대를 지배했지만 불과 몇백 명밖에 안 되는 스페인 침략자 에르난 코르테스에게 얌전하게 굴복하였을까? 그 침략자들이 신이 아니라 단지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뒤에 말이다.
왜, 카를 12세, 나폴레옹, 이어서 히틀러는 역사에서 되풀이된 비극적인 결과를 알면서도 러시아를 침공했을까? 러시아는 촉(蜀)나라 성도(省都)와 같다. 엉성하여 들어가기 쉬운듯하지만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힘들어 결국 패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위치이다.
왜, 인조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숭명반청으로 나아갔을 때 청나라가 침략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하였는가? 전쟁이 끝나고 삼전도의 참혹한 굴욕을 당하고도 여전히 명나라를 숭상한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역사에서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참으로 멍청한 독선과 아집으로 나라를 혼란하게 만든 수없이 많은 사례에서 ‘왜’를 붙여 불러낼 수 있다.
악정에는 네 종류가 있지만, 이들은 서로 결합하여 파국으로 몰아간다. 예를 들어 무능하면서 독선적이거나, 지나친 야심이 폭정과 어울리기도 한다.
첫 번째는 폭정이다. 이것은 역사상 워낙 사례가 많은 경우다. "너희 부왕께서 메어주신 멍에가 무겁다고 한다마는, 나는 그보다 더 무거운 멍에를 너희에게 지우리라. 부왕께서는 너희를 가죽 채찍으로 치셨으나 나는 쇠 채찍으로 다스리라." 이스라엘 민족을 갈가리 찢은 르호보암의 말이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도 폭정에 시달려 짧은 제국의 길을 걸었다.
두 번째는 지나친 야심이다. 예를 들어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에 시칠리아를 정복하려던 아테네의 야망과 무적함대를 이끌고 영국을 침략하려 했던 펠리페 2세의 야심도 좋은 예이다. 독일이 두 차례나 시도했던 자칭 우수 민족에 의한 유럽 지배의 꿈과 허무하기 이르는 데 없는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구상도 빼놓을 수 없다.
세 번째는 무능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무능 끝판왕이 아스텍 왕국 몬테수마(Montezuma)라면, 유럽 역사의 무능 끝판왕은 에스파냐의 분열을 몰고 와 무어인을 800년이나 지배하게 한 서고트족 왕들이다. 조선 시대 무능의 끝판왕은 인조이다. 인조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실리외교를 멀리한다. 이미 정묘호란(丁卯胡亂, 인조 5년) 때 청나라의 군사력을 알고 있었음에도, 10년 후 전쟁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채 병자호란을 불러왔다. 청은 조선의 전략과 군사력을 훤히 꿰뚫어 강화도를 막고 남한산성으로 몰아갔다.
마지막은 독선과 아집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커다란 독선의 상징은 트로이 목마다. 그리스는 영웅 아킬레우스를 잃어버려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었음에도 트로이는 참혹한 패배를 맛보았다. 아폴론 신전의 신관인 라오콘의 절규와 군중의 반대도 무릅쓰고 적의 기만 물인 목마를 아테나 신에게 드리는 봉물이라는 이유만으로 성벽 문을 부수면서까지 성안에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역사는 그날을 비극을 잊을 수 없어 <오디세이아>라는 대 서사시를 남겼다.
과학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여 화성까지 탐사함은 물론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의 시대로 발전하고 있지만, 인간의 무능과 독선, 야심은 시대를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플라톤은 일찍부터 이런 위험성을 알고 철인 왕이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그의 이상(理想)은 실현될 수 없었다. 조선은 성학십도(聖學十圖)를 병풍으로 만들어 제왕학을 가르쳤지만, 선조의 독선과 아집, 무능은 바꿀 수 없었다.
“어디쯤 와있는 걸까 가던 길 뒤 돌아본다.” 이문세의 노래처럼 우리는 정치 구조가 바뀌고 경제 환경도 변했지만,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인간 본성이다. 독선과 아집은 타고난 천성이라 그 어떤 것에서부터 배우기를 거부한다. 개인이라도 문제가 있지만, 지도자라면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킨다.
*참고 및 인용 : 바버라 터치먼 지음 초석현 옮김 <바보들의 행진> pp.10-60, 윌리엄 번스타인 지음 김현구 옮김 <부의 탄생> pp.354-355
윤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