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처럼 바람처럼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한 당신의 말은 옳았습니다./Beethoven's 5 Secrets -The Piano Guys

장전 2020. 12. 5. 08:01

 

 

 

김규나

<'네 머리는 장식, 네 삶은 타인 뜻대로'를 가훈으로 삼지 않으려면!>

-당신은 어떻게 할 작정이오?

-추적할 일이 있어요. 나의 과거를 추적하는 일 말입니다.

-당신이 언젠가는 과거를 되찾게 될 거라고 생각은 했소만, 정말 그럴 가치가 있는지 잘 모르겠소. .. 지금부터는 뒤를 돌아보지 말고, 현재와 미래만을 생각하시오. -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중에서.

소설의 주인공 기 롤랑은 10여 년 전 어떤 사건으로 기억을 잃었다. 자신의 이름조차 잊어서 기라는 이름도 자신을 찾아 달라 찾아갔던 탐정 사무소의 위트가 지어준 이름이다. 위트는 과거 같은 거 찾지 말고 나랑 같이 일하자 제안했고 기는 자신을 찾는 일을 미룬 채 흥신소 일을 도우며 살았다. 그러다 위트가 은퇴하고 떠나게 되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트러스트미>의 강무훤처럼 자신을 찾아 나선다. 처음 기가 그의 결심을 말했을 때 위트는 과거 뭐 하러 찾냐, 앞만 보고 가라, 조언한다. 그러나 나중에 그는 기에게 편지를 보내온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한 당신의 말은 옳았습니다.

이 말이 항상 옳은 건 아닐지 모르겠다. 과거에 얽매어 복수의 화신이 된다거나 억울하게 당한 원수를 갚겠다고 인생을 온통 과거를 향해 쏟아붓는 일은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정리가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정리, 무엇이 거짓이고 진실이었나 하는 건 알아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뒤돌아 볼 일 더 이상 없어야 하고, 위로 튼튼히 쌓아 올리기 위해서는 기초를 단단히 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복수니 원수니 하는 것도 가능하겠구나, 이해가 되기도 한다.

 

잘못 위에, 거짓 위에, 불신 위에 우리의 미래를 쌓아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 억울하게 죽은 가족의 죽음을 없었던 일처럼 묻을 수는 없는 것처럼, 억울하게 쓴 누명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갈 수는 없는 것처럼, 또는 횡령이 의심되는 직원을 데리고 일할 수는 없는 것처럼, 바람피우는 애인을 순진하게 사랑할 수는 없는 것처럼.

 

궁금하면 파헤쳐 알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세상은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몰라도 돼. 그런 거 없어. 넌 왜 그리 의심이 많아? 사람이 순진해야지 말이야, 또는 이렇게도 말한다. 바람 안 피우는 남자 있어? 두 집 살림하는 거 의심스럽더라도, 그거 확인하면 뭐 할 거야? 남편이 돈 가져다주면 모른 척 살림하고 애 키우고 살아. 그럼 언젠가는 돌아와. 두들겨 패는 것도 아니잖아.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살아 행복하냐, 행복했느냐, 후회 없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거 아닌 줄 아니까, 과거를 바로 알고 현재를 바로잡아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아니까. 그걸 막으려고 이 시대 언론, 정치인. 사악이념빠, 빅 테크 모두 과거를 지우고 있는 것이다. 의혹과 불리한 사실은 박박 지우며 자신들의 주장만 남겨두는 것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 미래를 지배한다'는 말을 믿고 왜곡하고 삭제하고, 있는 것은 없다. 없는 것은 있다, 흰 것은 검다. 검은 것은 희다, 우기고 우기고 또 우기는 것이다. 목적은 하나. 자신들 뜻대로, 자신들이 지배할 수 있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 내가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으면 그냥 남들이 시키는 대로, 세상이 길 내준 대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차라리 '네 머리는 장식, 네 삶은 타인 뜻대로'를 가훈으로 달고 살도록!

 

기는 추적 끝에 자신의 이름을 알게 되고 친구를 알게 되고 연인이 있었음도 알게 되지만 기억의 퍼즐은 완전히 맞추어지지 않는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과거 자신의 주소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찾아가기로 한다. 그곳에 희망이 있을지 절망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곳에 간다고 완전한 자신을 되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를 찾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인생이란 사실 나는 왜 태어났는가,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며 찾아가는 여정이므로, 내가 누구인가 하는 물음을 갖고 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진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작가는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의 해체,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그게 뭐 중요하냐는 포스트모더니즘, 뭐 그런 쪽으로 다분히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아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 어떤 인간으로 살다 죽고 싶은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묻고 답을 찾아가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어떤 나라인가. 어떤 국가여야 하는가, 어떤 세상의 국민으로 살고 싶은가. 그 또한 고민해야 한다. 그걸 알기 위해 과거를 분명히 알아야 하고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

 

지금이 바로, 이토록 혼란스러운 지금이, 저들이 저토록 악착같이 감추고 억지 쓰며 지우고 왜곡하려는 과거를 올바르게 알고 지켜야 할 때다. 그러나 정말 어둡다. 너무 어두운 밤이다. 그래도 믿어보련다. 새벽이 오기 전 어둠이 가장 짙은 법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