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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아시나요? /추억의 가을노래 이연실 - 가을노래모음 (여수 旅愁, 기러기) 반복듣기

장전 2020. 8. 8. 05:18

 

박경욱

 

그녀를 아시나요?

목요일 밤 9시 쯤이다. 고향 친구와 인사동 조금(鳥金)이란 집에서 밥을 먹고 밖으로 나와 골목에서 담배를 피웠다. 맞은 편 카페에서 어느 여인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른다. 그 옛날 그녀의 노래다.

눈물을, 그것도 특별한 눈물을 잔뜩 머금은 음색 때문에 절대 듣지 않는 노래다. 나도 친구도 말을 멈추고 서로를 쳐다봤다. 우리는 안다. 시골에서 초중고를 함께 다닌 사이라 그 노래의 행간에 흐르는 참 많은 것들을 안다. “하……아, 뭐냐 이거……우리 가자.”

 

잠시 친구와 함께 걸었다. 친구는 안국역에서 전철을 탔고 나는 가슴이 내려앉은 채로 터벅터벅 걸어 사무실에 들어갔다. 친구도 그렇게 갔을 것이다.

나는 기어이 그녀의 노래를 꺼내 듣고 말았다. “가네, 가네……”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옛날이 비처럼 내렸다. 아픈 사람들이 쏟아져 내렸다. 중학교 가자마자 간질 때문에 스스로 목을 맨 순영이 얼굴도 떠올랐다. 그 친구를 아는 사람이 없다. 나도 생전에 두세 번 얼굴을 봤을 뿐이다. 그런데도 아주 선명하게 떠올랐다. “내,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그녀의 노래를 안 듣는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엔 눈물이 묻어 있다. 흘리지 않고 삼킨 눈물이, 누가 안 보는 곳으로 가면 금방 터져버릴 것 같은 눈물이.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일치감치 학교를 때려치우고 노래를 불렀다. 뽕짝에 저항했던 청년 그룹의 일원이었다.

음악에 삶의 드라마를 넣기 위해서 그랬나, 다방 레지 생활도 했다. 우리 대학시절에 모든 것을 거부했지만 그녀는 귀히 여긴 존재 중 하나였다. 아무튼 그녀는 우리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한때는 굉장한 히트곡도 냈다.

불행한 결혼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남자를 만났다. 설상가상, 딸을 잃었고 아들이 네 살 때 이혼했다. 90년대 초반까진 가수 생활을 했는데, 어느 날 홀연 사라졌다. 아예 자취를 감췄다. 누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

 

아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잘 자라 지금 어느 회사의 사장이다. 엄마를 애타게 찾지만 아직도 엄마 소식을 모른다. 어쩌면 그렇게 그녀는 삶조차 꼭 자기 노래처럼 사는지. 그래서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그렇게 애잔할 수가 없고, 눈물 배인 옛 풍경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듣자니 나도 나를 감당할 수가 없다.

올해 71세. 살아 있다면 만나고 싶다. 그 아들은 오죽 하겠는가. 지금은 그 누나의 노래 ‘여수(旅愁)’가 흐른다.

 

그녀를 아시는지요? 물론 아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