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minique - Soeur Sourire
Dominique, nique, nique
S'en allait tout simplement,
Routier, pauvre et chantant
En tous chemins, en tous lieux,
도미니끄, 니끄, 니끄는
정말 소박하게 살다 갔지,
용병으로, 청빈하게 노래부르며
모든 길로, 모든 곳으로,
Il ne parle que du Bon Dieu,
Il ne parle que du Bon Dieu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만 말을 하지,
그는 하느님에 대해서만 말을 해
A l'epoque ou Jean Sans
Terre, d'Angleterre etait le roi
Dominique notre pere,
combattit les albigeois.
영국 출신이었던
왕, 쟝 쌍 떼르가 다스리던 시절에
우리의 수호자 도미니끄 성인은
알비죵파 사람들과 싸웠지.
Certains jours un heretique,
par des ronces le conduit
Mais notre Pere Dominique,
par sa joie le convertit
어떤 날에는 이교도가
그를 고난으로 몰고갔으나
하지만 우리의 수호자 도미니끄 성인은
기쁨을 가지고 그를 개종시켰다네.
Ni chameau, ni diligence,
il parcourt l'Europe a pied
Scandinavie ou Provence,
dans la sainte pauvrete
낙타도 없이, 마차도 없이
그는 걸어서 온 유럽을 두루 돌아다녔지
스칸디나비아나 프로방스를,
청빈을 정결하게 지켜가며
Enflamma de toute ecole filles et
garcons pleins d'ardeur
Et pour semer la parole,
inventa les Freres-Precheurs
열정으로 충만한
모든 학생들을 불타오르게 했고
또한 말씀을 전하기 위해
설교자 형제단을 창설했지
Chez Dominique et ses freres,
le pain s'en vint a manquer
Et deux anges se presenterent,
portant de grands pains dores
도미니크와 그의 형제들 집에
마침내 양식이 떨어지게 되었지
그러자 천사 둘이 나타났지,
계란 노른자를 입혀서 구운 빵을 많이 가지고서
Dominique vit en reve,
les precheurs du monde entier
Sous le manteau de la Vierge,
en grand nombre rassembles.
도미니크는 꿈속에서 보았어,
온세상의 설교자들을
성모 마리아의 그늘 아래
모여든 수많은 설교자들을
Dominique, mon bon Pere,
garde-nous simples et gais
Pour annoncer a nos freres,
la vie et la verite.
저의 훌륭한 수호자 도미니크 성인이시여,
저희를 지켜주소서.
꾸밈없고 즐겁게 인생과 진리를
저의 형제들에게 전파하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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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eur Sourire ('노래하는 수녀')
노래 부른 가수의 본명은 Jeannie Deckers로 벨기에에 있는 도미니크 피세르몽 수녀원의 수녀다. 수녀원에서 전도활동의 일환으로 만들어 부른 노래들이 반응이 좋자 수도원에서 레코드를 만들어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방송을 타고 전세계적인 히트곡이 되었다.
1963년 쉐르 수리르(Soeur Sourire: Sister Smile)란 이름으로 노래한 "Dominique"는 미국에서는 노래하는 수녀(The Singing Nun)로 더 잘 알려졌고,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는 1963년 12월 7일 부터 28일까지 연속 4주간 1위에 올랐다.
음악활동을 하면서 생긴 수입은 모두 수녀원에 기부했으나, 이를 증빙할 영수기록들을 잘 챙겨두지 않은 관계로 기부한 사실을 입증하지 못해 벨기에 정부로부터 과도한 세금이 부과되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1982년 Dominique를 디스코 버전으로 내 놓기도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불합리한 세금문제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다 끝내 10여년을 같이 한 동료와 함께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그녀가 자살한 후 벨기에 정부는 세금보다 몇 갑절이나 많은 저작권료를 그녀에게 지급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노래하는 수녀', Soeur Sourire가 부른 Dominique 는 Soeur를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노래이다. 수녀원의 평범한 수녀였던 Soeur가 부른 Dominique는 1962년,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대 히트했고 얼마 후, 미국의 팝싱글 차트에서 1963년 12월 한달동안 1위를 하기도 했다. (우리 나라에서도 '도미니끄 수녀' 란 노래와 함께 유행) 이 노래는 샹송의 형태로 만들어진 일종의 전도가라고 할 수 있다. 작곡자는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는 "쉐루 수리르"(soeur sou rie, 미소의 소녀).. .. 그 소녀는, 벨기에의 도미니끄의 수도원에서 수도하는 수녀였다
약 30년 전쯤 이 수도원에 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들어왔는데, 그 분으로 인해서 노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원래 샹송의 발생은 이러한 전도가와 깊은 관계가 있으나 친근미가 있는 곡조를 지닌 이 노래는 대중 음악으로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노래를 부른 Luc Domique(뤽 도미니크)는 삶의 궤적에 따라 이름이 여러 번 바뀌어야만 했던 가수였다. 태어날 때의 이름은 'Jeannine Deckers'였는데, 불우하고 고독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잠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1959년 벨기에에 있는 Fichermont 수녀원(修女院)에 들어간다. 이때는 Luc Gabriel(뤽 가브리엘)이란 이름으로 생활하면서 자기가 작곡한 곡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곤 하여 동료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한다.
그러자 수녀원의 간부들은 ‘그녀의 흥겨운 노래들이 해외 선교에 사용될 수 있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1961년 Luc은 부뤼셀에 있는 필립스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게 된다. 이때에는 ‘Soeur Sourire(미소 수녀)’라는 이름으로 노래를 하였고, 영국과 미국에는 ‘노래하는 수녀(Singing nun)’로 소개되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 때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인기를 능가하였고 이 노래는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Luc은 인기를 얻게 되자 수녀원을 떠나 환속(還俗)을 한다. Luc Dominique(뤽 도미니크)라는 이름으로 노래를 녹음하고 새로이 활동을 하지만 수입은 별로였다. 왜냐하면 그 동안의 활동이 오로지 Fichermont 수녀원에 속한 ‘미소 수녀(Soeur Sourire)’라는 이름으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이름의 이 가수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한때, 엘비스 프레슬리의 인기를 능가했던 Luc Dominique(뤽 도미니크) ... 이 앨범하나로 빌보드챠트 1위의 정상에 오르고 전기 영화까지 만들어져 힛트를 하였지만 스치듯 지나가는 영광은 비극적인 운명으로 연결되는 것일까? 마약과 알코올, 우울증, 정체성 혼란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던 그녀는 내적인 소용돌이를 거듭하다가 1985년 절친한 친구인 Pescher와 벨기에의 그녀의 집에서 동반 자살함으로 안타깝게도 생을 마감한다. 수도자였던 그녀가 이 세속에선 얼마나 살기 힘든 일이 있었을까를 짐작할 뿐이다.
창조주로 부터 선사받은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인해 신을 섬기는 삶을 이어갈 수 없었던 Soeur수녀. 그녀의 자살은 많은 의혹을 남기지만 죽음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마지막 유서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영적으로, 재정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신께로 돌아가렵니다. 오직 신만이 우리를(재정적인) 파산으로 부터 구원해 줄 수 있습니다."
그녀가 세상을 뜬지 20년이 된 2005년부터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그녀를 새롭게 조명하려는 연극이 공연되고 있다. 이 연극에서는 베일에 쌓였던 Luc의 내면세계를 냉정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외적으로는 모순덩어리였지만 매력적이고 진지했던 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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