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故鄕 長華里와 迎瑞堂의 빛

고택 안에 들어간 호텔 … 400년 시간을 잇다

장전 2014. 8. 16. 08:39

고택 안에 들어간 호텔 … 400년 시간을 잇다

입력 2014-08-15 오전 1:09:09
수정 2014-08-15 오후 3:31:16













건축가 김찬중
경북 안동시 민속촌길 190번지. 야외 민속촌으로 접어드는 언덕길을 내려가면 산자락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고택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우아한 기와 지붕, 훤히 트인 대청마루, 한지를 바른 여닫이 문 등 단아한 풍경은 전통 한옥 그대로다.

하지만 여기에 반전(反轉)이 숨어 있다. 날이 어둑해지면 댓돌 아래서 은은히 빛이 새어나오고, 자동차 열쇠를 닮은 첨단 스마트 키(smart key) 버튼으로 문이 열린다. 지난 7월 문을 연 전통 고택 리조트 ‘구름에’(gurume-andong.com)다.

 1975년 안동댐 건설 당시 수몰 위기를 피해 이 곳으로 옮겨온 후 30년간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폐가처럼 방치돼온 일곱 채의 고택이 새 숨결을 얻었다.

200~400년 고취가 담긴 서운정·청옹정·칠곡댁 등이 12개의 객실(독채 4개)을 갖춘 호텔로 되살아난 것이다. 고택과 현대 건축의 만남이다.

 “기존 한옥의 모습을 최대한 존중하되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싶었어요. 한옥의 매력과 장점은 그대로 남기면서도 좀더 쾌적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고택 재생 작업을 맡은 건축가 김찬중(45·건축설계사무소 더시스템랩 대표·경희대 건축학과 객원교수)씨의 말이다.

그가 참여한 고택 작업은 획기적이다. 재현·복원에만 초점을 맞춘 기존의 접근 방식과 달리 금속·유리 등 현대 건축 재료를 과감히 끌어들였다.

 사실 건축계에서는 김씨가 고택 일을 맡은 것 자체가 화제였다. 이른바 ‘하이테크파’ 건축가의 고택 작업이라는 점에서다. ‘건축은 최적의 시스템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해온 그는 재료·설계·시공방식 등에 첨단 기술을 적극 활용해온 건축가로 손꼽힌다. 그런 그가 옛날 한옥과의 대화에 나선 것이다.

◆사람과 함께 숨 쉬는 고택=“처음 현장에 와보니 벽엔 구멍이 뚫려 있고, 문 열면 박쥐떼가 우르르 쏟아져 나올 정도였죠. 그래서 재생 작업이 더욱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요즘 사람들이 이렇게 열린 마당과 마루가 있는 한옥을 온전히 ‘내 공간’처럼 누려볼 기회가 거의 없잖아요. 오랜 시간을 견뎌온 고택이 사람들과 더불어 다시 호흡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가 설계를 맡고 가장 먼저 한 것은 고택의 장점과 단점을 분석하는 일이었다. 직원들과 함께 ‘고택 체험’으로 이름난 곳을 찾아다녔다.

가장 큰 단점은 보안과 욕실 사용이었다. 문고리를 걸어도 보안이 걱정되고, 샤워를 하기 위해 마당을 건너다니는 불편함이 컸다. 설계는 이런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작업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옛 집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서 원하는 기능을 살리기 위해 그는 ‘집 속의 집’ 개념을 끌어들였다.

◆시간을 포개놓은 집=“사실은 구조 자체가 워낙 낡아서 바꾸기도 어려웠어요. 그걸 구조적으로, 기능적으로 보완한 게 금속 판을 내부 벽으로 새로 짜 넣은 것이에요. 벽과 벽 사이에 단열재·방수·전기 등 현대 설비도 넣고요.” ‘문안의 문’도 이렇게 나왔다. 옛 벽의 한지 문을 열면 유리 문이 나온다. 한지 문과 유리문은 각기 과거와 현재, 시간의 대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각기 다른 시간의 결이 한 공간에 겹쳐 있는 모습이다.

 이곳 고택에선 조명등 하나 눈에 띄지 않고 마치 고택이 살아서 빛을 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큰 특징이다. 벽과 벽 사이에 LED 조명기구를 숨겨놓은 것이다. 그는 “한옥의 신비로움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재생 작업은 1년 가까이 걸렸다. 김씨는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관찰하는 게 무엇보다 흥미롭다”며 “내게 고택은 요즘 유행하는 글램핑(안락한 캠핑)과 개성으로 승부하는 부티크 호텔의 하이브리드 모델의 의미다. 다음엔 이보다 훨씬 진화된 첨단 고택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고택 리조트 조성은 SK행복나눔재단이 문화체육관광부·경상북도·안동시와 MOU를 맺고 추진했다. 

안동=이은주 기자
[사진 건축사진가 김용관]

◇ 김찬중(45) = 건축설계사무소 더 시스템랩(thesystemlab.com) 대표. 경희대 객원교수. 고려대 건축 공학과 졸업. 스위스연방 공과대학 수학, 미 하버드대 건축대학원 졸업. 한울건축과 미 캠브리지 챈 크리거 어소시에이츠(Chan Krieger Associates)등에서 일했다. 대표작 = 폴 스미스 플래그십 스토어, 한남동 오피스(핸즈 사옥), 연희동 갤러리 등.

◇전통 리조트 ‘구름에’ = 150년~400년 역사를 간직한 조선시대 한옥을 SK행복나눔재단과 안동시가 ‘고택 살리기’의 일환으로 호텔과 같은 숙박시설로 만든 곳이다. 고택은 1975년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수몰 위기에 처했던 것을 민속전시관으로 옮겼다가 2005년에 현재 위치로 다시 옮겨놓았다. 7월 1일부터 숙박 공간으로 쓰이고 있는 7채는 계남고택·칠곡댁·팔회당재사·감동재사·서운정·청옹정·박산정이다. 운영은 SK행복나눔재단이 설립한 사회적기업 ‘행복전통마을’이 맡고 있다. 문의 054-823-9001. 홈페이지 www.gurume-and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