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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왈츠 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클래식 사상 최초의 ‘국제 히트곡’… 1867년 빈 남성합창단이 초연 오스트리아의 모든 방송국은 매년 해가 바뀌는 첫날 0시 정각에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방영해 새해를 알린다. 그런가 하면 새해 아침에는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이 곡으로 신년음악회의 서두를 장식하고, 이 신년음악회는 유럽 모든 지역과 미국에 위성으로 중계된다. 오스트리아 국민 대부분은 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비공식적인 국가(國歌)처럼 여기기 때문에 음악학자 에두아르트 한슬릭은 이 곡을 “가사 없는 애국적 국민가요”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왈츠가 오스트리아에서 이처럼 사랑받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1866년 7월3일, 베네덱 장군이 지휘하는 오스트리아 제국군은 몰트케 장군이 이끄는 프로이센 연합군에게 쾨니히그레츠 전투에서 참패한다. 이로 인해 오스트리아는 제국의 긍지를 잃었고, 빈의 경제는 바닥을 쳤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예정돼 있던 여러번의 무도회는 돈이 훨씬 덜 드는 음악회로 바뀌었고, 이 때문에 빈 남성합창협회는 당시 궁정무도회 음악감독이었던 요한 스트라우스에게 사육제 음악회의 합창을 위한 왈츠 작곡을 의뢰했다. 요즘 연주되는 곡에는 일반적으로 가사가 없지만 작곡 당시에는 합창곡으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1867년에 빈 남성합창단이 초연한 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작곡가의 의도와는 달리 당시 빈의 정치·경제 상황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가사를 사용해 일부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생동감 넘치는 스트라우스의 음악은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다시금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1890년부터 이 곡은 조국의 푸른 강물과 아름다운 자연을 찬미하는 현재의 가사로 바뀌면서 오스트리아인들의 더욱 큰 사랑을 받게 됐다. |
"도나우(영어로는 다뉴브[Danube])강"하면 "빈", "빈"하면 "왈츠", "왈츠"하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An der schonen blauen Donau)"을 누구나 연상하게 됩니다. 유럽의 지리를 모르는 사람들도 이 3자 관계는 대개 알고 있습니다. 이 곡은 '왈츠의 아버지'로 불리운 요한 스트라우스(Johann Strauss, 1804∼49)의 아들인 '왈츠의 왕' 요한 스트라우스 2세(Johann Strauss, Jr. 1825∼99)가 작곡을 했습니다. 1867년에 빈 남성합창협회의 청탁으로 카를·베크의 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가"를 왈츠로 작곡한 것이 바로 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입니다. 그 전 해(1866.6), 사도와에서 전개된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의기소침해 있던 빈 시민들은 이 곡을 듣게 되자, 그것을 노래하면서 또다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 곡의 연주 시간은 10분 20초입니다. 이 연주는 바로 2003년 빈 신년 음악회에서 연주된 실황녹음입니다. 2003년 1월1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오후 7시) 오스트리아 수도 "빈(Wien, 영어로는 비엔나[Vienna])"에서 열렸는데 실황은 전 세계에 위성중계를 했습니다. 지휘는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했는데요. 1939년 클레멘스 크라우스의 지휘로 시작된 빈 필 신년음악회는 전세계 40여개국에 생중계되는 세계적인 음악회입니다. 매년 새해가 시작되면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빈 필하머닉 오케스트라(Wiener Philharmoniker)는 해마다 지휘자를 바꿔가며 신년 음악회를 열고 있는데요 이는 항상 전세계의 관심이 됩니다. 물론 그 TV 실황은 고스란히 음반과 비디오, DVD 등으로 나오고 인기리에 팔립니다. 2002년 신년음악회는 일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가 지휘를 해서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죠. 요제프 크립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로린 마젤, 카를로스 클라이버, 주빈 메타, 클라우디오 아바도 등 쟁쟁한 지휘자들이 그동안 지휘를 해왔구요. 2001년에는 아르농쿠르가 했었답니다. 상임 지휘자가 없는, 아니 다르게 말해서 상임지휘자를 두지 않는 빈 필하머닉 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 지휘자가 된 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지금은 한국에서 중계를 별로 안해주지만 저도 어렸을 적에 새해에 TV에서 중계를 해주던 신년음악회를 보던 기억이 나네요. 세계에서 가장 음향이 좋기로 알려져 있는 금빛이 찬란한 빈 악우협회 황금홀(Musikverein Goldenersaal)에서 왈츠가 연주되는 것을 보고 여기 한국과는 다른 모습으로 새해를 맞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1842년 궁정 지휘자인 오토 니콜라이에 의해 창단된 빈 필하모닉은 흔히 1980년대만 해도 레너드 번스타인의 뉴욕 필하머닉 오케스트라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베를린 필하머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세계 3대 오케스트라로 불렸는데요. 일찌감치 뉴욕필이 떨어져 나가고 카라얀이 타계한 지금은 빈 필하머닉 오케스트라와 견줄 오케스트라가 없는 듯 하네요. 다른 오케스트라와 다르게 빈 필은 지금 음악가 단체가 아니라 당당히 한 명의 아티스트로 대접받고 있는 것을 음반사인 도이치 그라모폰의 홈페이지에 가면 알 수 있습니다.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1929년생으로 독일과 프랑스의 경계에 있는 로렌 지방의 귀족 후예로 베를린에서 태어났죠. 성장은 주로 오스트리아에서 이루어졌고 그라츠와 빈에서 첼로 수업을 받으며 음악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아르농쿠르가 원전악기나 정격연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빈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공부하면서부터 였다고 하네요. 졸업 후 빈 심포니의 첼로 주자로 취직한 것이 1952년, 우리 식 나이로는 24세 때였습니다. 하지만 아르농쿠르는 정격연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빈 심포니의 멤버들을 일부 규합하여 (여기에는 그의 아내가 된 바이올린 주자 알리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Concentus Musicus Wien)'라는 원전악기 앙상블을 결성하게 됩니다. 이것이 1953년으로, 이들은 4년 후인 1957년에 데뷔 연주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후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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