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 '헝가리 광시곡'(1번~19번 전곡)

장전 2012. 7. 17. 23:57

 

 

리스트 / '헝가리 광시곡'(1번~19번 전곡)

Hungarian Rhapsody

 

Franz Liszt, 1811-1886

 

 

프란츠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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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광시곡(1번~19번 전곡) 피아노 연주 로베르토 시돈(Roberto Szidon)

 

 

 
 
 

지난해 쇼팽 탄생 200주년에 이어 2011년 올해는 리스트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피아노의 귀신’ ‘피아노의 파가니니’ ‘교향시의 창시자’. 베토벤의 제자이자 피아노 교본으로 유명한 체르니에게 교습을 받고 빈에서 연주회를 하던 열 살 무렵 당시 한 신문은 리스트를 ‘구름 속에서 떨어진 헤라클레스’라고 표현했습니다. 그의 연주를 직접 본 베토벤은 ‘제2의 모차르트’라고 했죠. 이처럼 여러 현란한 수식이 따라붙을 정도로 리스트는 음악사에서 그 이름 자체로 무게감을 지닙니다. 예술가로서나 인간으로서나 19세기의 중심인물이었던 그는, 음악이란 세계를 포용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었으며, 그 자신 가능한 한 넓게 자신의 그물을 세계 속으로 던졌습니다. 리스트 자신 이런 말을 남겼군요. “나 같은 인생을 살았다는 자체가 역사로 쓰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훤칠한 키, 잘생긴 외모, 긴 금발을 날리며 무대로 걸어나가는 모습은 청중들을 마력에 사로잡히게 했고, 손에 끼고 있던 가죽장갑을 재빨리 벗어던지면서 겉옷 자락을 튕기듯이 뒤로 젖히고 피아노 앞에 앉는 동작은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쇼맨십에 여성 팬들은 비명을 지르다 못해 기절하기도 했다. 슈만의 말처럼 이 거장의 손가락에 의해 피아노는 빛을 내뿜었으며, 그의 연주를 듣는 사람들은 최면에 걸렸다. 연주가 끝나면 귀부인들은 꽃다발 대신 보석을 던지면서 이 ‘신성한 남자’를 가까이 보려고 무대 위로 돌진했다. 그들은 그가 일부러 피아노 위에 놓고 간 장갑을 가지려고 육탄전을 벌였다. 대중매체가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에 오늘날의 오빠부대 부럽지 않게 큰 인기를 누린 음악가가 바로 프란츠 리스트이다. 이러한 리스트 열병을 가리켜 시인 하이네는 ‘리스토마니아’(Lisztomania)라고 이름 붙였다.

 

바라바스 미클로슈, ‘프란츠 리스트’ 1847

 

리스트의 연주와 작품에 관한 만화가 많은데, 이것은 1842년의 베를린에서의 열광을 그린 것입니다. 오페라글라스로 보는 이, 꽃을 던지는 이, 박수를 치는 이가 그려져 있네요. 오늘날 오빠부대보다 더 광팬들인 듯^^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리스트의 젊은 시절 이야기이다. 36세 되던 1847년 이후 그는 대중적인 연주회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물론 리스트는 죽기 직전까지 연주회에 출연했지만 대개는 자선연주회였고 지휘나 레슨에서처럼 단 한 푼의 돈도 받지 않았다. 1865년 4월 이 전설적인 ‘러브레이스’(lovelace는 보통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쓰이는데, 리스트의 전기작가들은 그를 ‘러브레이스’라 불렀다)는 홀연 발목까지 오는 긴 검은 옷인 ‘수단’(soutane)을 입는 가톨릭 수사로 변신한다. 그 후 그는 소명의식을 갖고 오라토리오와 미사곡을 작곡하는 등 교회음악의 발전에 정진한다. 또한 말년의 리스트는 기이하고 실험적인 피아노 작품들을 작곡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 시기에 작곡한 곡들은 20세기 음악의 방향을 예감한 것들이었지만 당대 사람들에게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

한마디로 리스트는 전설적인 삶을 살았다. 초인적 기교의 연주자, 화려한 연애행각의 바람둥이, 진지한 작곡가, 거룩한 사제, 미래음악의 예견자! 이 모든 수식어가 리스트라는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출중한 인품은 일부는 바이런이었고 일부는 카사노바였으며, 한편으로는 메피스토펠레스였으며 한편으로는 성 프란체스코였다.

 

가톨릭 성직자를 상징하는 수단을 입은 리스트 만년의 모습.

 

요제프 단하우저, ‘피아노를 치는 프란츠 리스트’ 1840. 파리의 한 살롱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리스트를 중심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로시니, 파가니니, 빅토르 위고, 알렉상드르 뒤마 페르, 조르주 상드, 마리 다구 백작부인, 그리고 베토벤 흉상. 그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회화 및 사진예술> 방 472번 글 '피아노를 치는 프란츠 리스트'를 보시기 바랍니다.

리스트가 남긴 작품들은 그의 인생만큼이나 다채롭다. 우선 피아노의 거장답게 많은 피아노 작품을 작곡하였다. 대표적인 피아노 작품으로는 여기서 전곡을 선보이는 화려한 <헝가리 광시곡>과 야상곡풍의 <사랑의 꿈>, 단악장으로 된 <피아노 소나타 b단조>가 있으며, 파가니니 작품의 주제를 사용한 <파가니니 대연습곡>과 <초절기교 연습곡>은 리스트가 근대 피아노 기법의 창시자임을 입증해주는 고난도의 피아노 연습곡들이다.

 

피아노만큼 리스트의 독보적인 위업이 빛나는 분야는 교향시일 것이다. 그는 명실상부한 교향시l의 개척자로서 <전주곡> <오르페우스> <햄릿> 등 10편이 넘는 교향시들을 작곡했으며, <단테 교향곡> <파우스트 교향곡> 등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진보적인 형식의 표제교향곡도 작곡하였다. 도한 미사, 오라토리오, 칸타타와 같은 수많은 종교 합창음악은 말년에 수도자의 길을 걸었던 리스트가 남긴 신앙의 표현들이라고 할 수 있다.


리스트는 관현악이나 오페라 같은 대규모 편성 음악들을 피아노로 편곡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는데, 특히 베토벤 9개 교향곡 전곡을 편곡한 것은 베토벤의 진가를 세상에 제대로 알려 그를 최고의 작곡가로 인정받을 수 잇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


“피아니스트로서나 음악가로서나, 혹은 최소한 한 인간으로서 그 어떤 이도 리스트에 견주어 말하지 않도록 하자. 리스트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탁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1873년 헝가리의 신문에 실린 리스트(62세)의 캐리커처. (a) 리스트의 등장. 그의 오만한 미소는 성직자의 수단에 의해 부드러워졌다. 갈채의 폭풍. (b) 첫 화음. 그는 청중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린다... (c) ...눈을 감고, 마치 자신을 위해 연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d) ‘피아니시모’ :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새들에게 이야기한다. (e) 햄릿의 사색. 파우스트적 불안, 한숨... (f) 추억들 : 쇼팽, 조르주 상드, 젊음, 달빛, 사랑... (g) 단테의 ‘지옥’ : 저주받은 한탄, 뇌우의 폭발. (h) 그는 우리를 위해 연주했다.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