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 / 오페라 “마농 레스코” 중 “일찌기 보지 못한 미인” 등 14곡 - 마리아 칼라스

장전 2012. 7. 5. 07:49

 

Maria Callas, The Platinum Collection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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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Nov 2005

A-D

Label: EMI Classics

 

 

전 곡 이어듣기
 

마리아 칼라스처럼 한 시대를 풍미하다가, 그것도 어느 한 부분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음악적인 부분 포함하여 자세한 그 내막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겠지요. 웹에서 전해지는 내용 중 정확한 정보는 가려가며 살펴야 할 것입니다. 네티즌의 운명이랄까 업보랄까. 오늘은 전에 올린 마리아 칼라스 플래티넘 컬렉션 두 번째 음반입니다. 역시 아리아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한 시간 여, 마리아 칼라스와 함께 아직 궂은 봄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아래 글은 재미있는 일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웹에서 가져왔습니다. 

 

 


01. 조르다노: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 안드레아 셰니에

02. 스폰티니: 오 신이여 지켜주소서 - 베스타의 무녀

03. 마스네: 안녕 작은 테이블이여 - 마농

04. 푸치니: 일찍이 보지 못한 미인 - 마농 레스코

05. 비제: 세비야의 성 근처에(세기디야) - 카르멘

06. 로시니: 그건 저예요 - 세빌리아의 이발사

07. 들리브: 종의 노래 - 라크메

08. 베르디: 오 나의 고향이여 - 아이다

09. 푸치니: 오 아름다운 아가씨 - 라 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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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푸치니: 주인님 들어보세요! - 투란도트

11. 레온카발로: 새의 노래 - 팔리아치

12. 베르디: 사랑은 장밋빛 날개를 타고 - 일 트로바토레

13. 푸치니: 제게 작은 사랑을 주세요 - 나비 부인

14. 마이어베어: 그림자의 노래 - 디노라

 

 

 

마리아 칼라스 (MARIA CALLAS)


"Before Christ와 Before Callas, 지구상에는 이 두 가지의 B.C.가 존재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성악계에서 칼라스의 존재는 특별하다.


1950년대 클래시컬 레코드 산업을 획기적으로 성장시킨 장본인이며, 지존의 프리마 돈나 Prima Donna로 우뚝 선 최고의 소프라노이다. 1923년 12월 2일 미국의 뉴욕生이며, 그리스 혈족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다. 어릴적 그녀는 그냥 뚱뚱하고 평범한 소녀였지만 10대 초반에 천재적인 본능을 드러낸다.


부모의 이혼 등으로 소녀기에 정신적 고통을 겪으며, 엄마와 그리스로 돌아가서 본격적인 성악 공부를 하게 되고,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리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녀는 체중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보무도 당당한 200파운드의 거구인 그녀는 독한 마음을 먹고서 1953년부터 1년 사이에 거의 80파운드를 빼버리는  초인적인 다운사이징에 성공하여 무대에서 자신감을 가지게 됨으로서 명실상부한 프리마 돈나로 태어난다. 몸무게를 거의 반으로 줄이는 살인적인 감량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파워풀하고 맑은 영혼의 소리를 낸다. 성량과 체중은 별개라는 사실을 몸소 입증한 인물이기도 한 것이다.


195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벌이는 레나타 테발디와의 라이벌전은 유명하다. 일단 나이는 레나타가 마리아 보다 한 살 더 먹었고, 국적은 이탈리아와 미국으로 전통의 강호와 대항마를 내세운 신흥국이다. 인상은 레나타 쪽이 사람 좋다는 소리 들을 것 같다. 그럼, 역시 공격은 마리아 칼라스 쪽에서 하는 것이겠지?


이들의 경쟁은 1950년대초부터 시작되는데, 레나타가 라 스칼라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을 때 마리아가 혜성처럼 등장해 아이다 Aida에서 주연을 꿰차는 등 마구 들이대기 시작한다.


1951년에는 같이 남미 투어에 나서는데, 앵콜을 받지 않기로 한 약속을 깨고 레나타가 두 곡의 아리아 aria를 앵콜송으로 부른데 대한 비난을 퍼부었고, 2라운드는 오페라 '춘희 la traviata'의 비오레타vioretta 역할에 대한 레나타의 다른 해석에 마리아가 날을 세웠으며  계속해서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지 않자 급기야 흥미를 느낀 타임誌times에서 이들에 대한 기사를 쓰게 된다.

 

여기서 둘의 다툼은 최고조에 달하는데, 타임誌의 기사에 의하면 마리아 칼라스는 자신과 레나타 테발디를 비교하자면 "Champagne with Coca-Cola"라고 말하였다고 기사화 된 것이다.

 

Maria Callas, R.Champion, Marilyn Monroe


하지만 나중에 인터뷰 당시 목격자들에 의하면 "Champagne with Cognac"이라고 말했을 뿐이라고 한다. 물론, 타임誌 기자는 끝까지 마리아가 Coca-Cola라고 했다면서  모든 걸 그녀 탓으로 돌렸다.


이들의 싸움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뻥인지 알 순 없다.  하지만 그 최대의 수혜자는 바로 두 사람과 그들의 레코딩 회사들이다. 흥미진진한 싸움과 이권이 걸린 세력들의 부추김이 세상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자명한 사실이며, 라이벌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이 둘에 대한 관심은 더 커져갔고 비례해서 레코드도 불티나게 팔려 나갔으니까. 하지만 어쨌든, 결과는 헤피 엔딩이다. 1968년 두 사람은 화해를 하게 된다. 레나타의 공연장을 찾은 마리아는 공연이 끝난 뒤 대기실로 찾아가 성공적인 공연을 축하해줬다. 하지만 이 때는 이미 마리아 칼라스가 마지막 오페라 무대를 가진 뒤였다. 둘 다 소프라노로서는 서산에 걸린 해 또는 떨어진 별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것은 같은 時代를 이고 산 名소프라노 둘의 마지막 만남이다. 애정과 애증의 범벅이 그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았을까?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을 중심으로 벌어진 이들의 대혈전(?)은 대중들의 관심을 증폭시켜 레코드 산업을 무지 발전시켰다고 본다.


때론 격정적이고, 또 한편으로는 잔잔한 호수에 동그라미가 번지듯이 퍼져나가는 칼라스는 범접하기 어려운 확실한 카리스마를 가진 소프라노이다. 칼라스의 공식적인 데뷔무대는 1951년 12월 라 스칼라 극장에서 펼쳐진 'I Vespri Siciliani'이며, 라 스칼라는 50년대 그녀의 고향이 된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1952년 런던의 로얄 오페라 하우스에서, 미국에서의 첫무대는 1954년 시카고에서 가진다.


그녀가 이탈리아의 성악계에서 자리매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두 남자가 있다. 메그니니Giovanni Battista Meneghini와 세라핀Tullio Serafin이 그들이다. 세라핀은 무대를 찾지못해 헤매는 칼라스에게 기회를 제공한 인물이며, 메그니니는 음악적 후원자 겸 매니저였고, 둘은 1949년 결혼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했다. 1957년 오나시스의 러브 보트를 타기 전까지는.


오나시스Aristotle onassis, 참 대단한 양반이다. 선상 파티에서 칼라스의 마음을 뺏어버린 그로 인해 1959년 메그니니와 칼라스는 이혼을 한다. 오나시스에 마음을 완전히 뺏긴 칼라스는 음악 활동도 거의 접고 아방궁 생활에 만족하며 살지만, 그것도 역시 영원할 수는 없다.


연인이 된 9년 뒤인 1968년, 연인 관계로 지내던 그들에게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가 끼어들어, 오나시스와 재클린은 결혼을 하게 된다. 재클린 케네디 Jacqueline Kennedy. J. K. Kennedy가 저격을 당한 후, 미망인이 된 재클린은 오나시스와 재혼함으로써 온 미국인들을 경악케 한 인물이자. 마리아 칼라스를 한 방에 보내버린 장본인이다. 사랑에 웃고, 사랑에 울고. 이 때 칼라스는 배신감과 좌절감에 거의 잠 못 이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도 남편에게 짱돌을 날린 적이 있으니. 사필귀정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