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처럼 바람처럼

미국인 여교사의 생명 나눔

장전 2011. 1. 27. 07:13

[만물상] 미국인 여교사의 생명 나눔

  •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열두살 팔레스타인 어린이 아흐메드는 요르단강 서쪽 예닌에 살았다. 2002년 민간인 250명이 이스라엘군에게 학살당한 증오와 폭력의 도시다. 아흐메드는 2005년 장난감 총을 들고 나갔다가 진짜 총으로 잘못 안 이스라엘 병사에게 사살됐다. 아버지 카티브는 이스라엘 어린이 여섯에게 아들의 장기(臟器)를 나눠 주기로 결심한다. 저주와 복수 대신 사랑의 손길을 내민다.

독일 감독 마르쿠스 페터는 이 이야기를 다큐로 찍어 2008년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 재작년 파주에서 열린 DMZ다큐영화제에 개막작으로 초청됐던 '예닌의 심장'이다. 페터는 기부금을 모아 예닌에 극장을 짓고 작년 8월 조촐한 영화제를 열었다. 그 개막식 무대에 열여덟살 이스라엘 소녀가 섰다. 팔레스타인 어린이의 심장이 소녀의 가슴에 뛰고 있었다. 폭력과 전란에 찌든 사람들 가슴도 평화의 염원으로 박동 쳤다.

▶1994년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미국인 가족의 자동차에 난데없는 총탄이 날아들어 일곱살 니컬러스가 뇌사상태에 빠졌다. 부모는 충격과 슬픔 속에서도 아들을 축복과 박애 속에 떠나보내고 싶었다. 이탈리아는 아들을 앗아 간 곳이었지만 부모는 그곳 사람 일곱명에게 아들의 장기를 나눠 줬다. "장기 기증은 빼앗기는 게 아니라 고인의 뜻에 따라 자비를 베푸는 것"이라고 했다. 유럽 최하위였던 이탈리아 장기기증자는 니컬러스 사건 뒤 두 배로 늘었다.

▶작년 말 미국 LA에서 유학하던 한국인 고교생이 다른 유학생과 싸우다 쓰러져 뇌사로 판정받았다. 연극배우인 아버지 이상희는 그곳 의사 권유를 받아들여 아들의 장기를 미국인 여덟명에게 기증했다. 그는 "아들의 죽음을 그나마 헛되지 않게 하고 싶었다. 아들도 하늘에서 기뻐할 것"이라고 했다. 타국, 그것도 아들을 잃은 한스러운 나라에 아들의 몸 일부를 떼놓고 오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의정부 외국인학교의 미국인 여교사 린다 프릴이 지난 주말 뇌출혈로 쓰러진 뒤 한국인 다섯명에게 장기를 나눠주고 떠났다. 피부와 뼈 조직도 여러 환자에게 이식될 것이라고 한다. 인구 100만명당 장기기증률이 스페인 34명, 미국 27명인 데 비해 한국은 3명밖에 안 된다. 쉰두살 여교사 프릴은 열네 해 살아온 한국 땅에 새 생명을 주고 떠나면서 마지막 나눔과 베풂이 어떤 것인지를 한국인들에게 보여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