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렀던 흔적들

방랑자들의 목소리

장전 2010. 1. 25. 08:12

 

 

텅 빈 고치(Cocon du Vide)’
중국식 주판과 불교의 염주, 나무 의자, 놋쇠로 만든 종, 금속 등을 이용해 제작한 작품이다.

 

 

 

‘방랑자들의 목소리(The Voice of Migrators)’
외국으로의 망명이라는 경험을 통해 천전은 오늘날 문화 및 문명화의 과정으로 인해 끊임없이 일어나는 미묘한 변화와 차이, 전환과 움직임을 더욱 예리하게 자각할 수 있었다. 위태로운 균형미의 ‘이주자들의 목소리’는 직물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체로, 여러 언어로 속삭이는 전화 자동응답기의 소리가 들리는 작품이다. 이는 개인을 하나의 민족적 위치에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존재의 총체성이라는 틀 안으로 자연스럽게 통합시키고자 하는 비전을 나타내고 있다.

 

 

 

유랑 art。|방랑자들의 목소리

천전의 예술과 생애

 

“예술가로서 나의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다. 예술 작업이란 응시의 시선으로 자기 자신을 진단하고 세계를 향해 눈을 돌리는 것이다.”라고 생전의 천전을 말한 바 있다. 그는 자가면역 용혈성 빈혈이라는 희귀 질환으로 2000년에 세상을 떠났다. 25살 때부터 이 질환을 앓기 시작한 그는 5년 간의 예후 기간을 진단 받은 상황에서, 티베트의 승려들과 함께 비(非) 물질주의적인 환경 속에서 3개월 간 생활하였다. 티베트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는 심신의 건강뿐 아니라, 창작의 자양분이 될 영감과 에너지, 생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일찌감치 시간과 공간의 가치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분석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천전의 양친은 모두 의사였고, 그 역시 애초 의학을 공부하였다. 자신의 질병을 자기 존재의 중요한 일부분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그는 예술가로서의 자기 인식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 뒤 그는 자발적 선택으로서의 유랑의 경험과 인간의 몸, 자신의 질병과 중국의 의술이 지닌 면면을 일종의 메타포로 한데 엮어, 물질과 정신, 집단과 개인, 내부와 외부 사이에서 일어나는 복합적이고 때로는 역설적인 상호 작용을 탐구하였다.

 

이 글에서 소개하고 있는 작품 대부분은 천전이 세상을 떠난 2000년에 제작된 것이다.

 

 



신체 내부의 크리스털 풍경(Crystal Landscape of Inner Body)’ 
천전은 크리스털을 재료로 11개의 장기를 만든 뒤 그것을 수술용 침대 위에 배열함으로써, 크리스털로 이루어진 내면의 풍경을 탄생시켰다. 신체 내부의 풍경이 지닌 크리스털 표면에 외부의 풍경이 반사되면서, 내부와 외부, 인간의 몸과 사회 간의 관계성을 강조하고 있는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생명의 가치와 그 깨지기 쉬운 연약함 역시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 천전은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아프다고 느낄 때는 이미 너무 늦다. 그보다는 병에 걸리지 않는 편(즉, 사전 예방)이 더 낫다는 것, 그것이 나의 처방이다.”

 

 

 

시너지의 장(Field of Synergy)’
시각을 통해 특별한 생체 에너지의 자장을 경험케 하는 작품이다. 천전은 순수를 대변하는 아동용 침대를 상징적으로 사용해, 끝없이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욕망과 모순투성이의 어른들이 사는 세계와 아이들의 세계 간에 존재하는, 두드러진 차이를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아이의 침대는 인간의 몸을 대변하는 것이자, 은유적으로는 욕망과 꿈, 인생의 부침을 표현한 것으로, 사회와 인간 신체의 유기적 연관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질병과 같은) 육체적 이상 상태에 정신을 몰두한 나머지 사회적 이상 상태의 근원을 간과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간곡히 제안하는 것이다.

 

 

 

여섯 개의 길 - 고행(Six Routes - Souffrance)’
‘시너지의 장’과 유사한 접근 방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간 신체의 여섯 가지 기초 감각이자, 존재 및 인간 모순의 여섯 가지 상태에 대한 불교적 표현을 형상화한 것이다.

 

 

 

뮤지컬 도서관 (Bibliotheque Musicale)’
분주한 상하이의 거리에서 아침마다 여성들이 요강을 닦는 소리를 녹음해 작품의 사운드로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운드를 통해 천전은 ‘닦는다’는 의미의 한자어 ‘세(洗)’를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닦는다’는 것이 육체적인 영역에서부터(체액이나 분비물의 씻김) 정신적인 영역에까지(영혼과 문화의 정화) 이르는 행위임을 강조한 것이다. 천전은 ‘물’, ‘흙’, ‘불’과 같은 자연의 요소를 작품에 도입함으로써, 사물과 자연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형이상학적 공간을 창조하는 한편, 갈등 가득한 물질주의적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찰적인 내면의 분석이 필요함을 제기하고 있다.

 

 

신나는 배달(Exciting Delivery)’
천전의 1999년 작품으로, 중국 전통의 천룡(天龍)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자전거 튜브 위에 자전거 타이어 가닥을 길처럼 나란히 엮고, 그 위에 수많은 장난감 자동차를 쌓아 마치 용의 살갗 위에서 기생하는 벌레처럼 보이게 하였다. 그리고 전체를 검게 칠한 뒤 세 개의 자전거 바퀴로 만든 삼각대 위에 올려 놓은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신나는 배달’은 기생충이 우글대는 검은 대형 콩팥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자전거와 용은 중국의 정체성을 형상화한 것이다. 천룡이 고대의 문화적 상징이라면, 자전거는 마오주의적 근대화의 표지로, 서구 사회의 물질적 풍요를 상징하는 자동차와 연관된 의미를 갖는다. 즉 서구와의 경제적, 문화적 제휴에 의해 야기된 중국 사회의 변화를 비판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서구로 이주하며 겪었던 이문화의 경험으로 인해 천전은 소비 상품의 범람과 생태학적 불균형이 자본주의의 부산물이라는 것과 함께, 물질적 부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추구가 생태적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던 것이다.

 

 

‘검은 빗자루(Black Broom)’ 
가정용 빗자루의 솔 부분을 검정색 수혈 관과 피하 주사용 바늘로 대체하고 전체 크기를 거대하게 부풀림으로써 괴물 같은 위압적인 모습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여성의 머리칼이 지닌 유혹적 매력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인간의 몸에 대한 의학적 개입 행위의 공포를 환기시키고 있다.

 
천전이 그린 ‘검은 빗자루’의 스케치
 
 
 


피하주사용 바늘을 사용한 ‘검은 빗자루’의 솔 부분, 2000
 
 
 

 
Xu Min
쉬민
정화의 방(Purification Room)
 
 
 
천전, 풍경으로서의 신체’ 전시회를 위해 2008년 2월 23일 이탈리아 로베레토의 MART 미술관에서 열린 기자 시사회에서 천전의 부인 쉬민
 
쉬민이 뒤로 하고 있는 ‘정화의 방(Purification Room)’은 2000년 천전과 쉬민이 함께 제작한 작품이다. 당시 천전은 이 작품을 ‘단색의 무덤(Monochrome Tomb)’이라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천연 재료를 사용한 것은 이 사물들이 유래한 근원을 이해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에서의 순환 이후 그 사물들이 다시 되돌아가게 될 곳이 어디인지를 알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담겨 있는 정화의 의미란 쓰임이 다한 제 사물들의 희생과, 잠재된 영혼의 승화를 나타낸다. 즉 죽음에 이르게 된 제 사물들의 결말에 새로운 운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정화의 방’, 2000

 
 
 

 

'정화의 방’, 2000

 
 

출처 : Tong - justinKIM님의 | art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