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親과 獨島, 先代 對日 抗爭의 記錄

독도와 사서(司書)

장전 2008. 7. 27. 20:50
이 아름다운 獨島를 누가… 
동해의 작은 섬 독도는 저 홀로 아름답다.
봄엔 노란 들꽃으로, 
여름엔 갈매기 떼의 힘찬 날갯짓으로,
가을엔 쑥부쟁이로 뒤덮인다.
차가운 바람이 매서운 겨울에도 독도는 그 순결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일본의 억지 주장으로 섬 주변의 파고가 높아가고 있지만 독도는 결코 외롭지 않다.
독도를 사랑하는 온 민족의 뜨거운 마음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독도 지키는 우리 동식물 249종 
 
사진 제공 환경부
독도가 생태계의 보고인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는 독도의 생태계를 정밀 조사한 결과 
멸종 위기종 1급인 매와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인 해국, 
문어다리불가사리(위부터) 등이 발견됐다고 29일 밝혔다. 
독도에는 멸종 위기종 2급인 벌매 솔개 물수리 흑두루미 등 
조류 107종과 식물 49종, 곤충 93종 등 다양한 동식물이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 From: http://www.donga.com / 2006-05-30 
독도 멸종위기 조류 대거 서식 
 
독도에 멸종위기종 1급과 2급 조류를 포함한 조류 107종과 식물 49종, 
곤충 93종 등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한국 미기록종인 딱총새우류. (서울=연합뉴스) 
독도와 사서(司書)   2008/07/21 09:43
 

    [만물상] 사서(司書)
    김홍진 논설위원
    mailer@chosun.com

    김하나씨는 한국교원대를 졸업하고 캐나다 맥길대에서 도서정보학을 전공한 뒤 2003년부터 토론토대 도서관 사서(司書)로 일하고 있다. 그가 지난주 미국 의회도서관이 독도 관련 도서분류 주제명을 '독도'에서 '리앙쿠르암(巖)'으로 바꿀 것이라는 사실을 친구인 일본계 사서에게서 들었다. 권위있는 미 의회도서관의 결정은 각 도서관과 기관의 표기 기준이 된다. 김씨는 즉시 각국 한인 사서들과 연대해 항의서한을 보냈다. 미국 동포사회에도 도움을 청했다. 의회도서관은 독도 주제어 변경을 무기 연기했다.

    ▶방선주 박사는 30년 동안 미국 국가기록원 자료관에서 일하며 우리 근·현대사 자료를 발굴해왔다. 2005년엔 독도를 한국 땅으로 표기한 영국 정부 지도와 미 군정 지도를 찾아내 공개했다. 그가 동대문운동장 16배만한 자료더미에서 찾아낸 한국 자료가 150만 건, 엮어낸 책이 300권이다. 하버드대 옌칭도서관 사서 김성하씨는 1951년 이 도서관에 한국관을 세웠다. 한국 관련 책 100만 권을 정리·수집해 미국 내 한국학 본산으로 키웠다.

    ▶사서 중엔 역사적 인물들이 많다. 마오쩌둥은 사범학교를 나온 뒤 베이징대 도서관에서 보조 사서로 일하며 공산주의 이론을 닦았다. 러시아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은 강제노동수용소 도서관 사서로 일했다. 토머스 제퍼슨과 철강왕 카네기, 시인 롱펠로와 문호 괴테도 한때 사서였다. 교황 중에도 마르셀루스 2세를 비롯한 세 사람이 사서 출신이다.

    ▶19세기 영국 국립도서관 사서 안토니오 파니치는 관련된 책들을 연결시켜 주는 새 도서목록을 만든 공로로 기사 작위를 받았다. 책을 더 쉽게 찾도록 해준 '도서관 혁명'이었다. 미국 컬럼비아대 사서였던 멜빌 듀이는 1874년 학문별 번호로 책을 분류하는 듀이 십진분류법을 창안해 '사서들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사서가 책을 보관하는 게 아니라 정보를 서비스해야 한다는 철학을 세웠다.

    ▶사서는 책을 분류하며 정보의 성격을 1차적으로 결정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일본 관련 지도를 모아놓고 일본에 유리한 지도만 공개하는 일본 어느 도서관처럼 정보를 통제할 수도 있다. 사서가 공정한 시각을 가져야 이용자들도 균형 잡힌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김하나씨는 정보 왜곡에 맞서 정의를 세웠다. 한국 정부도 못한 일을 해냈다. 그녀 덕분에 사서라는 직업을 새삼 다시 보게 됐다.


     

    입력 : 2008.07.18 21:59 / 수정 : 2008.07.18 23:19
     

    한국의 독도 영유권 인정한 일본 태정관 문서



    1877년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인정한 일본 태정관 문서. 당시 일본의 최고 국가기관이었던 '태정관(太政官)'은 이 문서에서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는 것을 마음에 익혀라'며 일본 내무성에 훈령했다. 일본국립공문서관에 소장된 이 문서는 독도연구보전협회와 독도학회가 사본을 입수해 최근 발간한 소책자 '우리 땅 독도이야기'에 공개했다.

    '독도는 조선의 영토'표기 프랑스 지도



    프랑스 지리학자 당빌(J.B.B D'Anville)이 1737년 그린 '조선왕국전도(Royaume de Core´e)'. 이 지도에는 우산도(독도)와 울릉도를 한국 동해안에 더 가깝게 그려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명료하게 표시하고 있다. 이 지도는 독도연구보전협회와 독도학회가 공동으로 펴낸 소책자 '우리 땅 독도 이야기'에 소개돼 있다. (대구=연합뉴스)


    독도를 조선 영토로 기록한 일본 고지도



    근대 일본의 실학자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1785년에 그린『삼국접양지도(三國接壤地圖)』. 이 지도는 울릉도와 독도를 한반도와 같은 황색으로 칠했을 뿐 아니라 그 옆에 '조선의 것(朝鮮ノ持ニ)'이라고 글자를 써넣어 독도와 울릉도가 조선 영토임을 더욱 명료하게 표시하고 있다. 이 지도는 독도연구보전협회와 독도학회가 공동으로 펴낸 소책자 '우리 땅 독도 이야기'에 소개돼 있다. (대구=연합뉴스)



    '우리땅 독도'근거 자료 모은 소책자



    독도연구보전협회와 독도협회가 공동으로 5개국어로 제작한 '우리땅 독도 이야기'. 이 책은 19세기 일본의 최고 국가기관이었던 '태정관(太政官)' 자료 등 독도의 한국 영유권에 대한 객관성을 확보한 자료가 실려 있다. 이강일 (대구=연합뉴스) leeki@yna.co.kr -
    [만물상] 독도 유인화(有人化)
    김동섭 논설위원 dskim@chosun.com

     

    도쿄에서 1740㎞ 떨어진 태평양, 일본 최남단에 오키노토리시마(沖鳥島)라는 작은 암초가 있다. 이 암초는 밀물 때 바다 위로 가로 2m, 세로 5m, 높이 70㎝의 더블침대만한 바위만 드러나는 작은 산호초에 불과했다. 그나마 암초가 파도에 계속 침식되자 1988년 나카소네 총리는 "영토문제가 걸린 국가 비상사태"라며 '오키노토리시마 살리기'에 나섰다.


    ▶일본 건설성은 '재해복구' 명목으로 산호초 주변에 방파제를 쌓은 뒤 콘크리트 구조물 1만개를 쏟아부어 1993년 높이 3m, 지름 50m의 원형 인공 섬으로 키웠다. 400일 넘게 연인원 8만명을 동원하고 285억엔을 들였다. 이 암초가 사라졌다간 일본 영토 38만㎢보다 넓은 어업수역과 배타적 경제수역 40만㎢가 날아가기 때문이었다.


    ▶암초를 억지로 섬으로 둔갑시킨 일본이 거꾸로 독도는 섬에서 암초로 격하시키려고 용을 쓰고 있다. 낯이 보통 두꺼운 게 아니다. 일본은 1849년 독도를 발견한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에서 유래한 이름 '리앙쿠르암(巖)'을 국제사회에 퍼뜨려 왔다. 독도를 주인 없는 바위 덩어리로 몰아붙이려는 것이다. 일본이 전방위 국제 로비를 벌이면서 독도를 '리앙쿠르암(巖)'으로 표기한 각국 백과사전과 포털사이트가 2005년 2만2000개에서 3만8500개로 급증했다.

    ▶유엔 해양법 121조는 '섬은 자연적으로 생긴 육지이며, 암초는 사람이 살 수 없고 자체적으로 경제생활을 할 수 없는 곳'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독도는 1953년부터 독도의용대 수비대장 홍순칠 등 대원 33명이 살았었고 지금도 독도수비대와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높이도 동도는 99.4m, 서도는 174m에 이르러 일본이 만든 인공섬과는 비교도 안 되게 어엿한 섬이다.


    ▶정부와 여당이 어제 독도에 종합해양기지와 마을, 해양호텔, 어업인 숙소를 세우는 본격적 유인화(有人化)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그 동안 우리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데 굳이 소리를 내 일본과 국제사회 이목을 끌 필요가 없다는 정책을 견지해왔다. 그래서 독도에 시설물을 짓지 않고 방문자와 거주자를 제한했다. 그러는 사이 일본은 독도 인근 해저지명을 국제수로기구(IHO)에 '쓰시마 분지'로 등록하는 등 갖가지 외교적 술수를 부려왔다. 우리도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사실을 세계에 각인시키는 적극적 외교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