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親과 獨島, 先代 對日 抗爭의 記錄

이최선(李最善)

장전 2007. 10. 7. 22:19
이최선(李最善)

   시대 : 조선후기
   국적 : 한국
   생몰년 : 1825(순조 25)∼1883(고종 20)
   정의 : 조선 고종 때의 성리학자(性理學者).


생 애
  호는 석전(石田)이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전남 담양(潭陽) 출신이다. 이규형(李奎亨)의 아들로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다.

 

1859년(철종 10) 사마시에 합격하고, 1862년 「삼정책(三政策)」을 지어 왕에게 올렸다. 1864년(고종 1) 초시(初試)에 합격하였으나 복시(覆試)에는 응하지 않았다.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일어나자 의병(義兵)을 이끌고 상경하였으며,

 

1874년 이후로는 낙향하여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사 상
  그는 「독외필(讀猥筆)」에서 기정진의 「외필(猥筆)」이 주리설(主理說)을 밝혀 성현(聖賢)의 올바른 도리를 세상에 천명한 것이라고 거듭 말하였다.

 

이이(李珥)의 기자이설(機自爾說)·기발리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은 기(氣)만이 작용한다고 이해하면 주기설(主氣說)로 보이지만 전체를 본다면 주리설(主理說)이라 하여 이이와 기정진의 입장이 일치한다고 하였다.

 

예학(禮學)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 기정진과 상례(喪禮)에 관하여 질문하고 비평을 받았다. 그는 병인양요·임오군란(壬午軍亂) 등을 겪으면서 삼정(三政:田稅·軍布·還穀)의 문란함을 보고 「삼정책」을 그 대책으로 제시하였다. 여기서는 삼정의 문란한 실상과 관료의 부패와 타락성, 도탄에 빠진 백성의 참담함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삼정의 문란을 바로잡기 위하여 근본을 세워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그 근원적인 병폐는 기강이 무너지고 염치가 소멸된 것이라고 지적하여, 근본을 다스리고 근원을 맑게 하는 도리[治本淸源之道]로써 기강과 염치를 세워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근본과 말단을 분석하고, 근본에서 비롯하여 말단을 이끌어 가려는 선본후말론(先本後末論)을 도학(道學)의 기본 논리로 제시한 것이다.

 

그의 경세론(經世論)은 '이치를 밝혀[明理] 도학에 힘쓰고[勉聖學], 언론을 개방하며[開言路] 인재 선발을 엄정하게 하여[嚴科程] 현명한 인재를 얻어야 한다[得賢人]'는 근본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도학의 본말론을 시무(時務)에 관철하고자 한 것이다.

저 서
  저서에 『석전집(石田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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