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셋이 다 나온 사진을 갖고 싶어요." - 영화 <와일드 라이프> 중에서.
영화 <와일드 라이프>
"우리 셋이 다 나온 사진을 갖고 싶어요." - 영화 <와일드 라이프> 중에서.
영화가 끝났는데 가슴이 젖은 스펀지처럼 묵직해져서 도저히 꼼짝을 못하겠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영화 관련 자료 찾아보는데 1944년생 미국 작가, 리처드 포드의 동명 소설(1990년 작)을 각색한 작품이다. 그룹 '비치 보이스'의 리더, 브라이언의 불안정한 정신적 고통을 다룬 <러브 앤 머시>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던 폴 다노의 감독 첫 데뷔작이란다. 이제 30대, 그 시기를 지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30대 부모도 부모지만 소년의 심리를 어쩜 그리도 잘 따라가도록 만들었는지. 영화가 뒤로 가면 갈수록 밀도가 치밀해져서 가슴이 뻐근해진다.
자존심이 강하다보니 자꾸만 직업을 잃는 남편(제이크 질렌할). 일자리 찾아 점점 더 춥고 메마른 북쪽으로 북쪽으로 쫓겨 가는 삶. 그래도 아내(캐리 멀리건)는 밝게 살아가려 애를 쓰지만 끝내 한계에 다다른다. 그들의 열네 살 아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또 이사 가고 다시 전학하는 것. 그러나 아이는 인생의 고통이란 그것 말고도 아주 아주 다양하게 많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간다.
그렇다고 자극적으로 빠지지도 않고 범죄를 다루지도 않고 시시껄렁한 청소년 감성에 호소하지도 않는다. 자존심으로 뻗대느라 가정 쪽박 낸 철부지 아버지, 아직 서른 넷, 한창 젊고 뜨거울 때여서 외로운 엄마, 그 사이에서 '뒤늦은 사춘기를 겪는 부모를 키워내느라' 부쩍 철들어버린 열네 살 소년. 하지만 원작 작가도, 각색 작가들도, 연기자들도, 무엇보다 감독이 사람을 믿고 인간을 사랑하고 인생을 신뢰하고 있다.
‘행복한 가정은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그 유명한 첫 문장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냥 보통 가족들, 그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조금은 불운하지만 사실 우리들 누구나 겪어온, 지금도 아이들이 겪고 있는 너무나 평범한 모습들. 그래서 더욱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저 아이가 행복해졌으면, 저 아이가 무사히 잘 자라서 좋은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마침 어제 지인과 '무자식상팔자'라는 이야길 하다가 “그런데 자식이 없다는 건 미래가 없다는 거예요. 의무도 책임도 걱정도 없는 대신 소망도, 희망도, 기쁨도 없죠.”라고 내가 말했다. 아들 조를 연기한 2001년생 에드 옥슨볼드은 어쩐지 감독 폴 다노를 닮았다. 그래서인가, 연기도 참 좋다. 저런 아들 있다면 원도 없겠구만. 그게 또 그건 아니겠지만.
이번 주 ‘소설 같은 세상’에서 <홍당무>를 이야기할 때도 썼지만 같은 결론이려나. ‘너무 가까워서 상처를 주고받는 것조차 당연하게 여기는 가족, 그 속에서도 아이들은 성장하고 있다, 햇빛 한 줌을 보려고 삐뚤삐뚤 몸을 비틀며 자라난 못생긴 소나무처럼 오늘도 꿋꿋이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