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브런테 머그로 커피를 마시며
패디오에 앉아 Wuthering Heights를 다시 읽는다. 아니 에밀리의 영혼을 조금씩 마신다. 컵에는 '비겁한 영혼은 내것이 아니다'(No Coward Soul Is Mine)는 문구가 써 있다. 오후의 무료한 햇빛이 책장을 만지작 거리고, 바람이 한차례 지나갔는지 숲이 잠시 스산한 소리를 낸다. 가을은 또 잠깐동안의 유혹을 위해 오랜시간의 화장을 마쳤을까. 머잖아 늙은 작부처럼 립스틱 떡칠한 얼굴로 오겠지.. 애틀란타의 가을은 행색이 누추한데 걸음도 느리다. 잠시 책을 놓고 지난 여행을 반추한다. '문인들의 발자국 되밟기'. 이번 한달여의 영국 일주에 굳이 테마를 붙인다면 그렇다. 지난 4월 유럽 여행에선 아무것도 안하고 미술관에만 처박혀 있었는데, 이번에는 작정하고 시인, 소설가들 생가와 무덤만 열심히 찾아 다녔다. 이세상 사람이 아닌듯 위대해 보였던 작가들, 그들의 유적 보는것 만으로도 가슴 뜨거워지지 않는가.. 더 많은곳 다니고 더 상세히 봤지만 몇가지 포인트만 적는다.
순례는 런던에서 시작 되었다. 크리플게이트 교회 묘지에 잠든 존 밀턴, 무어게이트의 존 키이츠 생가, 올세인츠 교회에 누워있는 조지 오웰을 만났다. 참, 묘비에는 조지 오웰이 아닌 본명 Eric A. Blair로 새겨져 있다. 그리고 지나칠수 없는곳, 버지니아 울프 생가다. 그녀의 집은 내가 묵었던 호텔에서 켄싱턴 가든만 건너면 바로 나왔다. 하이드팍 게이트 22번지, 5층의 하얀집은 아침 햇살로 눈부셨는데 왜 나는 거기서 우울을 보았을까. 꼭 가 보리라던 로드멜의 그녀 묘지와 자살한 우즈강은 동선에서 너무 멀어 다음 기회로 미뤘다. 다시 북쪽으로 올라간다. 에이본 강가에 자리잡은 트리니티 성당 안에는 세익스피어가 묻혀있다. 아니 온가족이 합장되었다. 벽에 걸려있는 침례와 매장증서가 눈길을 끈다. 성당에서 그리 멀잖은 스트렛포드의 세익스피어 생가에는 아직 그의 후손들이 살고 있었다. 튜더왕조시대 양식으로 지어진 2층 목조집이다. 그리고 브런테 자매를 만나기 위해 하워스로 간다. 고교시절 <폭풍의 언덕>을 처음 읽었을때는 언쇼家의 그 복잡한 애증관계를 이해 못해 그냥 괴기한 느낌으로 책을 덮었었다. 하지만 캐서린의 애틋한 인생은 두고두고 잔영으로 남았다. 에밀리와 샬럿의 아버지 패트릭 목사가 시무하던 교회 사택이 그녀들의 생가이자 두 명작의 산실이다. 벽돌2층 건물이 의외로 크고 정원도 예쁘다. 집안에는 그녀들이 작품 쓰던 책상을 비롯한 유품들이 잘 보존돼 있다. 걸려있는 드레스와 모자에는 에밀리의 온기가 남아 있을지도 모르지.. 눈길을 끄는것은 벽에 북박이로 붙은 피아노, 그녀들은 그것을 치며 무슨 노래를 재잘 거렸을까. 그 시대의 어느 가족이나 그렇게 살았을 아기자기한 집에서 왜 그녀들은 슬프고 어둡고 아픈 작품들을 썼을까? 세상사에 백지였던 에밀리는 가상의 자신, 캐서린의 사랑을 왜 해피엔딩으로 그리지 않았을까?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혹시 집 뒤를 둘러싼 교회 묘지의 으스스한 기운때문? 아니면 하워스의 폭풍 몰아치는 언덕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온통 잿빛이어서 그랬을까... 하지만 나는 그녀들의 순수를 더 사랑 하리라는 예감으로 하워스를 떠났다. 호수마을 그라스미어, 윌리엄 워즈워스의 '비둘기 오두막'은 내부 수리로 가구가 치워진 빈집이었다. 담쟁이 흉내낸듯 하얀벽 타고 올라간 장미넝쿨은 세송이 꽃을 등불처럼 피웠다. 에딘버러에서는 '코끼리 집'에 들렀다. 조앤 롤링은 매일 이 카페에 처박혀 <해리 포터>를 쓰기 시작 했단다. 다섯개의 테이블이 길게 놓인 이 작은 카페 창문에는 "해리포터 산실" 이란 간판이 서있다. 남편과 이혼후 생활고와 우울증으로 한창 어려웠던 시기에 쓰기 시작한 이 판타지 소설로 훗날 엘리자베스 여왕보다 더 부자가 되는 기적을 그녀는 상상이나 했을까.
아이리쉬들의 고향, 더블린은 갈곳이 많았다. 제임스 조이스, 조나단 스위프트, 오스카 와일드, 윌리엄 예이츠, 사무엘 베케트, 버나드 쇼 등등... 우선 조나단 스위프트를 찾아 세인트 패트릭스 성당에 들렀는데 교회 행사때문에 출입을 막아 그의 묘지판은 볼수 없었다. 그래서 발길 돌려 윌리엄 예이츠의 찬트리 집으로 갔다. 브런테 자매의 목사관을 닮은 벽돌 2층집 현관을 덮은 마삭줄 넝쿨이 특이하다. 다시 리스가의 제임스 조이스 생가로 갔다. 집 들른것 만으로 퉁치고, 오코넬가에 서 있는 조이스 동상을 보기위해 물어물어 찾아갔다. 난해한 '율리시스'를 쓴 작가답지 않게 영감님은 조금 익살스런 자세로 서 있었다. 때마침 내리는 비를 맞아 그런지 전체 모습은 후줄근 하다. 그런데 좌대의 현판을 읽어보니 동상 제막일이 Bloomsday 1990 이다. 율리시스 무대의 하루가 1904년 6월 16일이지만, 공교롭게도 소설 탈고한 날도 1915년 6월 16일 이란다. 이날 더블린에서는 거리축제, 연극제 등등으로 기념하고 율리시스 낭독회도 연다. 그렇게 아일랜드 순례를 엉성하게 마치고 런던으로 돌아 오다가, 웨일즈에서 불현듯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바스(Bath)로 달려갔다. 로마식 온천탕이 남아있는 이 작은 도시에는 '제인 오스틴'이 있다. 사실 오스틴은 영국 오기전부터 꼭 찾아 보리라 마음 먹었던 작가다. 나는 그녀의 작품중 <이성과 감성>보다 <오만과 편견>을 더 좋아했다. 세 딸만 둔 나로서는 주인공 엘리자베스의 결기가 참 좋았기 때문이다. 원래 제목 <첫 인상> 처럼, 처음 느낀 오만이 편견으로 자리 잡은걸 그녀도 알지만, 한번 오만이면 죽어도 오만이다. 나는 Pride를 굳이 '오만'으로 옮긴 번역자의 센스가 마음에 든다. 소설로 자신의 삶을 가렸지만, 첫사랑 실패때문에 독신으로 살다 죽은 오스틴의 실제 인생과는 별개로...
엇그제 아이슬랜드 마지막 날, 벼르고 벼르던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집>에 가기 위해 란데야호픈 으로 향했다. 그런데 지난밤까지 그런대로 괜찮았던 날씨가 사납게 돌변해 비바람이 몰아친다. 아니나 다를까, 선착장에 도착하니 예약했던 보트는 보이지 않고, 선주가 차안에서 기다리다 도선 불가능을 통고한다. 먼 발치에서나마 엘리데이 섬을 볼까 했지만 폭우와 물안개가 완강히 막아선다. 그렇게 비요크(Bjork)의 집에서 그녀가 남겨둔 고독 한웅큼 가져 오려던 꿈은 아쉽게 무산됐다. 그 고독은 더 닳고 바래 조금씩 소멸 되겠지만, 언젠가 꼭 다시 가서 만져 볼거다. 때로 세상에서 가잘 쓸쓸하다 여겼던 내 고독도 쪼끔 덜어 거기 두고 와야지...
아이슬랜드에서 개처럼 떨다가 애틀란타에 오니 여기는 늙은 여름이 아직도 헐떡거리고 있다. 집 떠나 개고생 하다가 집에 오면 이리 편안하지만 어쩌랴, 또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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