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가을/ 이재무
움켜쥔 손 안의 모래알처럼 시간이 새고 있다
집착이란 이처럼 허망한 것이다
그렇게 네가 가고 나면 내게 남겨진 가을은
김장 끝난 텃밭에 싸락눈을 불러올 것이다
문장이 되지 못한 말(語)들이
반쯤 걷다가 바람의 뒷발에 채인다
추억이란 아름답지만 때로는 치사한 것
먼 훗날 내 가슴의 터엔 회한의 먼지만이 붐빌 것이다
젖은 얼굴의 달빛으로, 흔들리는 풀잎으로, 서늘한 바람으로,
사선의 빗방울로, 박 속 같은 눈꽃으로
너는 그렇게 찾아와 마음의 그릇 채우고 흔들겠지
아 이렇게 숨이 차 사소한 바람에도 몸이 아픈데
구멍난 조롱박으로 퍼올리는 물처럼 시간이 새고 있다
- 시집『몸에 피는 꽃』(창작과비평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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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마지막 하루까지 가을이라고 바락바락 우기며 가을을 우려먹는 이에게도 이제 가을은 사라졌다. 십일월의 마지막 밤을 노래하는 가수도 없다. 늦은 저녁 인적 없는 동네공원 앞을 지나다가 찬바람에 저절로 흔들리는 그네를 보았다.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내 마음 한 구석에도 저렇게 흔들리는 빈 그네가 있으리라. 굴참나무 껍질 같은 미련도 덕지덕지 쌓였을 것이다. 아침뉴스는 매일매일 미세먼저 농도를 알리는데 나는 아직 마스크를 준비하지도 못했다. 민주노총과 정부의 대치, 이재명 지사에 대한 의혹을 둘러싼 갈등, 기타 등등 내 이익이나 자존심과는 아무 상관없는 소란들 가운데 민주시민 노릇 해먹기도 참 어렵다.
이쯤 되면 면역력도 생길법한데 체력이 떨어진 탓인지 여전히 불편하다. 무릎 나온 바지, 헝클어진 흰머리에 걸음마저 더뎌간다. 비틀거리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다르게 살기에는 너무 늦었다. 관성을 멈출 제동력도 딸린다. 다리가 저려온다. ‘움켜쥔 손 안의 모래알처럼 시간이 새고 있다’ 어린 날의 태엽 풀린 나무탱크처럼 방향을 잃고 아무데나 처박힌다. 짊어지고 갈 등짐의 무게가 무거워도, 너무 가벼워도 인생살이는 고달프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무게를 덜어낸 만큼 삶은 경쾌하고 번민은 줄어들 것이란 사실. 지나간 시간의 끝자락에서야 깨금발로 깨닫는다. ‘세월의 집착이란 이처럼 허망한 것이다’
‘먼 훗날’이 아닌 지금 당장 ‘내 가슴의 터엔 회한의 먼지만이 붐빌 것이다’ 그러나 볼 장 다본 생이라 스스로 책망하지만 않는다면, 이제부터라도 소란스럽지 않은 단아한 일상을 꿈꾸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남은 시간에겐 좀 더 너그러워져야겠다. 누운 부처처럼 하루의 절반쯤은 비스듬히 늘어지는 것도 허용할 셈이다. 욕망이 소진되어 죽음조차 두렵지 않기를 소망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을 부러 꺼려하진 않겠지만 소박하고 단란해지고 싶다. 이미 둘레의 평판 따위는 상관없이 살려고 마음먹었으므로 그럴 듯하게 보이려는 따위의 수작도 그만 두겠다. ‘문장이 되지 못한 말(語)들’을 애써 수습하려하지도 않을 것이다.
무작위의 해악을 모르는 바 아니나 당분간 방치할 것은 방관하면서 무작위의 자유를 누릴 것이다. 얼마간의 오래된 채권도 독촉하지 않을 작정이다. 그 어느 것도 개의치 않으리라. 누군가의 손톱 끝에 물들여진 봉숭아물이 첫눈 오기 전 다 사라진다 해도 모른 척 할 것이다. 대신 감당하지 못할 청춘일 때는 한 페이지도 넘기지 못한 작은 활자체의 '三省版 世界思想全集'을 교정시력이 감당하는 한 단 몇 쪽이라도 느리게 읽어가길 희망한다. 비탈에 선 외로움을 다독거리며 한쪽으로 기울어진 얼굴엔 하회의 탈로 보완하겠다. 반성할 것이 나날이 줄어들길 소망하면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때가 되면 가버리겠다.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