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오탁번
눈으로 볼 수 있는 5천 개의 별은 우리 은하수 별의 고작 0.0001%에 지나지 않는다
이게 찻숟가락 하나 분량이라면 우주의 별은 지름이 13km나 되는 공을 다 채울 수 있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4광년光年 떨어진 케타우리 좌의 프록시마까지의 거리는
38조km이다 제일 빠른 우주선으로 가더라도 1만년이 걸린다
아내여 주민등록등본을 떼면 나하고 1cm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아내여
그대의 아픈 이마를 짚어보면 38조km나 이어져 있는 우리 사랑의 별빛도 아득히 보인다.
- 시집 『시집보내다』(문학수첩,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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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에 발표된 박재삼의 <아득하면 되리라>가 생각나게 하는 시다. “해와 달, 별까지의 거리 말인가/ 어쩌겠나 그냥 그 아득하면 되리라/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거리도/ 자로 재지 못할 바엔/ 이 또한 아득하면 되리라/ 이것들이 다시/ 냉수사발 안에 떠서/ 어른어른 비쳐 오는/ 그 이상을 나는 볼 수가 없어라/ 그리고 나는 이 냉수를 시방 갈증 때문에/ 마실 밖에는 다른 작정은 없어라” 다만 오탁번의 ‘’별‘에서는 그 아득함을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켄타우로스 좌의 프록시마까지의 거리’를 적시했다. 그러나 이 별은 태양계를 벗어난 외계 행성 가운데 하나다. 아득함을 넘어 상상만으로도 가뭇없이 사라질 지경의 거리다.
1977년 무인우주선 보이저1호가 태양계 행성을 탐사할 목적으로 우주를 향해 발사되었다. 보이저는 태양계 행성의 많은 사진들을 지구로 송신했다. 그 덕에 우리는 토성의 고리가 얇은 얼음조각이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지구를 떠난 지 13년이 흐른 뒤인 1990년 2월 보이저는 태양의 가장 바깥쪽 행성의 궤도를 넘어선 공간을 초속 18km(서울에서 부산을 20초에 갈 수 있는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미 배터리는 다 닳고 관성으로만 진행하고 있을 보이저에 광속으로 신호를 보내 '카메라를 지구로 돌려 사진을 찍어 전송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신호는 5시간 후 60억km 떨어져 있는 보이저에 도달했다.
몇 달 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실현가능성을 기대치 않았던 이 명령에 따라 보이저는 90년 3월부터 5월 사이에 태양계의 가족별과 우주공간에 외롭게 빛나는 '창백한 푸른 점' 지구 등을 찍은 수 십장의 사진을 보내온 것이다. 태양계 행성 탐사 임무를 마치고 아무런 에너지도 없이 관성으로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보이저호의 충실한 명령수행은 많은 과학자들의 가슴을 찡하게 했다. 그 보이저1호가 이제 태양계를 훨씬 벗어나 광대무변한 우주공간을 외롭게 질주하고 있다. 보이저1호는 인간이 만든 물체 중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보이저2호와 함께 예상수명을 훨씬 넘었으나 2030년까지는 지구와 교신할 수 있으리라 추측된다.
보이저에는 다른 항성의 외계인과 조우할 상황에 대비하여 지구인의 다양한 사진과 정보를 담은 골든디스크가 탑재되어 있다. 디스크에는 한국어 인사말'안녕하세요?'를 비롯한 55개 언어와 아기가 태어날 때의 울음소리, 고래의 울음소리 등이 수록되었으며, 피그미족 소녀들이 성인식에서 부르는 노래, 모차르트 음악도 담겨있다. 칼 세이건은 보이저가 보낸 그 한 장의 사진에 영감을 받아 ‘Pale Blue Dot’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주공간에 외로이 떠있는 한 점을 보라. 우리는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사랑하는 남녀, 어머니와 아버지, 성자와 죄인 등 모든 인류가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티끌 같은 작은 천체에 살았던 것이다."
우주에는 천억 개의 은하가 있다고 한다. 은하간의 거리는 너무나 멀어 우리 은하와 가장 가까운 은하인 안드로메다은하만 하더라도 이백만 광년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 그 시공의 상상만으로도 어질어질하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우주의 보다 먼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지금 우리가 보는 먼 은하의 빛은 몇 만 혹은 몇 억 년 전에 그 은하를 떠난 빛이다. 눈에 보이는 북극성은 800광년 저쪽에 있다. 그렇게 견주어보면 이승에서의 우리 삶 일체가 아주 짧은 꿈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별들을 인도양 모래알처럼 쪼개어 생각하니, ‘주민등록등본’상의 ‘1cm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아내’와의 거리가 다시 아득해지고, ‘우리 사랑의 별빛도 아득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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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탐사선 ‘인사이트’가 2백여 일의 여정 끝에 화성에 착륙했다. 지구에서 화성은 우주를 세계로 치환했을 때 우리 집에서 동네 우체국 가는 거리 정도다. 사실적으로 말하면 이보다 훨씬 더 가까운 거리일 테지만, 안방 침대에서 화장실까지의 거리라고 하면 얼마나 치사하고 허망하겠는가. 화성의 땅을 파보고서 옛날에 생물이 살았던 흔적이 있는지 장차 지구인이 살 수 있는 토양인지를 알아본다고 한다. 은하계에는 생물이 살 수 있는 별만도 5억 개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또 길어야 7억 년 안에 지구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는 환경으로 바뀐다. 그렇게 멀리 갈 것 없이 내 어머니 생전에 하시던 말씀이 “백년 후엔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있겠노?”였다.
술잔에 별이 떨어진다. 별빛이 반짝인다.
권순진